이달 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협상에 참여했던 양측 협상단 일부가 유사한 독극물 중독 의심 증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영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우크라이나 측 협상단 최소 2명이 이달 초 키이우에서 비공개 평화협상을 진행하던 중 유사한 독극물 중독 증상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측에선 크름반도 타타르의 루스템 우메로우 의원이 포함됐다.
이들은 안구가 충혈되고, 눈을 찌르는 듯한 통증과 지속적인 눈물, 얼굴과 손의 피부가 벗겨지는 증상이 있었다고 한다.
아브라모비치는 이후 폴란드를 거쳐 터키 이스탄불로 이동해 치료를 받았다. 상태는 호전됐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소식통은 “(증상은) 그가 키이우에 처음 갔을 때 있었다”며 “몇 시간 동안 시력을 잃었고 터키에서 루스템 의원과 함께 치료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생물학 또는 화학 물질에 의한 것인지, 전자기 방사선에 의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WSJ은 보도했다.
일각에선 종전을 원하지 않는 러시아 강경파들이 평화협상을 방해하려는 목적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측은 “독극물로 의심되는 어떠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대통령 대변인은 “많은 추측이 있지만 우리는 공식 정보만 따를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아브라모비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만났지만 특별한 영향은 없었다고 했다.
크렘린은 관련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WSJ은 전했다. 이들은 이후 계속 협상에 임하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 사건을 조사한 네덜란드 기반 탐사보도 단체 벨링캣의 크리스토 그로제프 수석조사관은 “3월3일과 4일 밤 평화협상에 참여했던 3명이 화학무기에 의한 중독 증상을 경험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인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독살 시도 사건을 조사했던 곳이다.
벨링캣은 “3명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 몇 시간 전 초콜릿과 물만 먹었다”며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것을 먹었던 또 다른 사람은 중독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조사에 필요한 샘플을 시기적절하게 구하지 못했다면서 독일 법의학팀의 독극물 검사를 실시할 즈음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원격 및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미상의 화학 무기에 의한 중독 증상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결론냈다”고 밝혔다. 또 “적은 양은 생명을 위협하기에 충분치 않다”며 “독살할 의도가 아니라 단지 경고였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대인 출신인 아브라모비치는 대표적인 러시아 올리가키(신흥 재벌) 중 한 명으로, 이스라엘과 포르투갈 국적도 갖고 있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출신이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 오랜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측은 협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미국 측에 그를 제재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 전해지기도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오는 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평화 협상을 재개할 예정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7일 러시아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 및 국제 사회가 안전 보장을 하면 중립국화 요구에 대해 타협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다만 이것은 국민 투표를 거쳐야 하며, 또 비무장 요구에 대해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