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가 결선 진출을 확정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들 후보의 선거 전략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제 무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논란이 많은 국내 정치 이슈에서 유권자들의 시선을 돌리려 애썼고, 친러시아 성향의 르펜 후보는 러시아와 최대한 거리를 두며 지지층을 확장하려 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AP통신은 이번 선거는 당초 극우 성향 우세가 예상됐지만 유권자들의 또 다른 관심사 중 하나였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판세를 흔들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선거운동을 거의 하지 않은 점을 주목, 가능한 정치적 논쟁을 피하고 자신이 모든 후보들 중 가장 대통령답다는 이미지를 과시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수십년 간 지속돼 온 ‘노란조끼’ 시위에 대한 처리, 코로나19 대응 등 논란의 여지가 있던 국내 정치적 문제에서 비껴나 지정학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국제 무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각인시키려 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마크롱 대통령은 성과 여부와는 별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중재를 시도했고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도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전략은 통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선두를 유지하며 결선 진출을 기정사실화했다. AP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마크롱 대통령의 중재 시도는 비록 실패했더라도 유권자들은 그의 노력에 보상했다”며 “이로 인해 3월 초 지지율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르펜 후보는 러시아와 최대한 거리를 두려 했다.
그는 과거 푸틴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식의 발언을 한 바 있고 러시아의 크름반도 강제병합 과정에서도 크름반도 독립을 지지하며 러시아 편을 들었었다. BBC에 따르면 그는 2014년 러시아 은행에서 1100만 유로(약 147억7000만원)을 대출받았고 지금까지 상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P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 대통령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르펜 후보에게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됐지만 그는 지난 2017년 대선 때와는 달리 푸틴 대통령을 이유 없이 방문하거나 푸틴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내걸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전략과 같이 프랑스 노동자 계층에 표심을 호소했다”면서 “경제 민족주의적 입장과 반이민 강경 정책, EU 회의론, 이슬람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은 바뀌지 않았지만 지지층을 최대한 넓히기 위해 노력했다”고 분석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후보는 오는 20일 예정된 양자 토론에서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 것으로 예상된다.
도미닉 토머스 CNN 유럽담당 해설위원은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 특히 젊은 유권자들의 불만은 대선 결과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면서 “르펜 후보는 이것을 계속 악용하고 정치적 혼란은 지속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반대로 마크롱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르펜 후보의 이전 지지를 유권자들에게 상기하면서 그가 외교정책을 이끌 자격이 없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토론을 잘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선은 2주 간의 선거 운동 기간을 거쳐 오는 24일 실시된다.
대선 1차 투표 전 실시된 여론조사들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결선에서 르펜 후보를 2~8%포인트 앞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이것은 5년 전 2배 정도의 득표율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던 것에 비하면 격차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지난 2002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한 현직 대통령이 된다. 5년 전 39세로 최연소 대통령이 된 데 이어 가장 어린 재선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 3번째 대선에 도전한 르펜 후보가 이길 경우엔 프랑스 첫 여성, 극우 성향 대통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