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시간) 러시아 방송에 등장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 프로그램 50여시간분을 분석해 서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략적 실수로 보고 있지만 러시아 매체들은 허위정보와 의견을 뒤섞어 작전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또 러시아 TV에는 서로 상충하는 주장들이 등장한다면서 이런 방식은 무엇이 사실인지를 시청자들이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NYT가 분석한 러시아 TV 보도 사례 분석이다.
▲4월 14일 우크라이나 미사일에 격침된 러시아 전함 사건 보도: 지난달 중순 흑해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한 넵튠 대함 미사일에 맞아 침몰한 러시아 해군 기함 모스크바호 사건은 러시아로선 큰 손실이었다. NYT는 미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모스크바함의 위치 정보를 제공해 격침을 도왔다고 보도했다. 해외에 주재하는 러시아 독립 언론은 이 사건으로 40여명의 수병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국영 매체 보도는 시간에 따라 변했다. 처음 러시아국방부는 모스크바함이 갑판에서 일어난 불로 인해 폭발을 일으켜 파괴됐다고 밝혔다. 이 함정을 해안으로 견인하고 있으며 선원들은 모두 안전하게 탈출했다고 밝혔다.
뒤에 러시아 매체들은 모스크바함이 견인되는 도중 폭풍으로 침몰했다고 전하면서 안전하게 탈출한 모스크바호 선원이라는 해군 장병이 즐지어선 장면을 내보냈다.
모스크바호 침몰은 러시아 내부에서 전쟁에 대한 반대를 자극할 위험성이 있는 사건이다. 러시아 뉴스매체가 반복적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상자수와 러시아측 사상자 보도를 축소하고 비난하는 것도 러시아 정부에겐 무시하기 어려운 점이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3월 처음으로 사상자수를 밝혔다. 러시아 시청자들에게 전쟁으로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발표조차 러시아 사상자수를 크게 줄였다. 서방 당국이 추정하는 러시아 전사자는 1만명, 부상자가 3만명이다.
▲4월2일 부차 도로에 널린 시신 보도: 키이우 인근 부차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한 뒤 도로 위에 시신이 널려 있는 사진이 보도됐다. 부차에서는 또 손이 뒤로 묶이고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민간인들이 발견됐다. 이 영상은 러시아가 전쟁범죄 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대대적으로 불러 일으켰다.
러시아 TV는 뉴스 진행자가 영상에 조작된 흔적이 있다면서 보도했다.
러시아 언론인들은 일부 시신의 옷이 도로에 며칠 동안 방치된 것 치고는 너무 깨끗하다면서 이들이 러시아군 점령시기에 숨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심야 뉴스프로그램 “브레미야”에선 시신이 부패한 흔적이 없고 상처에 있는 혈흔이 응고돼 있지 않다는 러시아 국방부 성명을 전했다. 성명은 “부차의 사진과 동영상들이 우크라이나 정부가 조작해 서방 매체에 제공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서방 매체들이 수정하지 않은 사진들에는 시신들이 부패한 흔적이 역력히 나타났다.
부차에서 찍은 동영상이라면서 일부 시신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하는 보도도 있었다. 자동차 후면거울에 비친 시신이 차가 출발한 뒤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서 서방 사진기자들이 촬영한 수십장의 사진들에는 같은 지역의 시신들이 부패하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후면거울 영상이 왜곡돼 시신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 거울에 보이는 시신 주변 건물 모습도 왜곡돼 있었다.
도로 위 시신이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은 뒤에 러시아 방송에 나타난 보도와 상충한다. 민간인들이 실제로 숨졌지만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죽였다는 내용이다. 그같은 주장을 하기 위해 러시아 국영 채널1은 동영상 촬영 시간을 조작함으로써 러시아군이 철수할 때까지 사망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주장했다.
허위선전 분석가들은 이처럼 서로 맞지 않는 주장들이 반복되면서 시청자들을 혼란에 빠트려 현지 상황에 대한 의심을 갖게 만든다고 밝혔다.
▲3월9일 마리우폴 산부인과 병원 폭격 보도: 마리우폴 산부인과 병원 폭격으로 부상한 임신부가 들것에 실려 불에 탄 병원 마당을 지나는 장면이나 파괴된 계단을 급히 내려오는 장면 등은 민간인들이 당한 피해를 분명히 보여주는 내용들이다.
러시아 TV들은 이 역시 조작된 것이라고 보도됐다.
러시아 TV들은 며칠 동안 집중 보도를 하면서 사진에 대한 서방의 보도에 온갖 트집을 잡았다. 서방이 보도한 똑같은 사진을 두고 실제 일어난 사건은 전혀 다른 것으로 전하기도 했다.
러 “마리우폴 점령” 선언·탈출 행렬 본격화
특히 서방에 널리 보도된 두 여성의 사진 중 하나는 인터넷 인플루언서 마리안나 비셰미르스카야가 살아남아 뒤에 딸을 출산했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임산부가 들것에 실려 가는 장면으로 뒤에 AP 통신이 이 여인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언론인들은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셰미르스카야는 자신이 들것에 실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러시아 TV는 병원에서 희생자들을 들고 나오는 군인들을 촬영한 동영상을 내보내면서 우크라이나의 신나치들로 구성된 아조우연대 소속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방 언론이 촬영한 장면은 희생 여성들 중 일부가 카키색 옷을 입고 있어 희미하게 군복처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비셰미르스카야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방의 분리주의 반군 지지자인 우크라이나 블로거 데니스 셀레즈네우와 인터뷰를 했다. 러시아방송은 비셰미르스카야가 아닌 아조우연대에 초점을 맞춘 장면을 내보내면서 이들이 폭격 당하기전 병원을 점령했다고 주장했다.
아조우연대가 폭격전 병원을 기지로 사용됐다는 증거는 서방 언론이 보도한 적이 없으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병원 폭격을 전쟁 범죄로 규정했다.
러시아 방송들은 그러나 비셰미르스카야 인터뷰를 그가 촬영한 동영상과 함께 내보내면서 아조우연대에 대한 그의 발언에 초점을 맞춰 그들이 식량을 요구한 도둑들이라고 비난했다. 비셰미르스카야는 동영상에서 “그들이 닷새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면서 “우리 음식을 가져가면서 ‘더 요리해달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와 언론들은 자주 우크라이나의 신나치운동을 침공 명분으로 주장해왔다. 푸틴 러시아대통령은 “탈나치화:를 핵심 목표로 제시했었다. 아조우연대가 2014년 우크라이나 극우민족주의자 및 신나치 단체들로 결성된 것은 맞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조우연대가 정부의 압력을 받아 극우적 색채를 크게 떨쳐 냈으며 우크라이나에서 신나치운동은 거의 사라졌다고 지적하면서 유대인 출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대통령이 된 점이 증거라고 강조한다.
▲3월4일 자포리지아 핵발전소 공격: 러시아군이 3월초 유럽 최대의 핵발전소로 진격했다. 우크라이나군과 소규모 충돌이 있었지만 화재가 발생하면서 곧 종료됐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의 최후”가 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또 이 사건을 러시아의 “핵 테러”로 비난했다.
그러나 러시아 방송은 전혀 다른 내용으로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발전소를 공격했고 도망치기 전 건물에 불을 질렀다는 내용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사보타지”로부터 발전소를 지켰다는 러시아 정부 성명이 반복해서 보도됐다.
그러나 몇 주 뒤 방영된 동영상에서 자포리지아 발전소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고 노동자들이 흠집하나 없는 시설에 도착해 질서 있게 검문소를 통과하는 장면을 촬영한 드론 영상이 보도됐다. 러시아 채널1 방송 “브레미야” 뉴스 리포터 알렉세이 이바노프는 “특별군사적전이 진행되는 동안 핵발전소는 한 순간도 가동을 멈춘 적이 없다. 현재는 발전량이 늘어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이바노프는 또 러시아 경비원이 “발전소 가동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러시아 군인은 인터뷰에서 “발전소 직원들이 자신들을 존중한다”면서 “질서있게 규율을 지키며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이 장악한 발전소를 더 잘 운영하고 있다는 주장이 국영TV에 자주 등장한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군을 파견했다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을 강조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