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비회원국 연합체인 오펙플러스(OPEC+)가 미국의 압박에도 대폭 감산을 결정하면서 국제유가 급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5일 가디언,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OPEC+는 이날 33차 각료급 회의를 열고 오는 11월부터 지난 8월 대비 생산량을 일 200만 배럴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최대 규모다. 지난 9월 결정 감산량인 10만 배럴의 20배에 달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주도한 이번 결정으로 후폭퐁이 예상되면서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2% 오른 93.8%를 기록해 지난달 15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일간 조 바이든 미 행정부 고위 관료들이 인플레이션 압박을 가중시킬 공급 억제를 막기 위해 중동 동맹국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전을 펼쳤지만 대폭 감산을 막지 못했다.
백악관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명의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오펙플러스의 근시안적 결정에 실망했다”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치솟았던 유가는 지난 6월 배럴당 120달러 수준에서 최근 80달러대까지 하락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로 지난 4개월 동안 30% 넘게 떨어졌었다. 그럼에도 미국과 영국 등 각국 자동차 운전자들은 여전히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해 생활비 위기가 악화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석유 시장을 뒤흔들었다. 서방 국가는 러시아산 석유를 기피했고 러시아는 인도와 중국으로 수출을 늘렸다. 동시에 석유 수요는 고유가와 중국 코로나19 봉쇄에도 반등했다.
이번 감산 결정으로 유가가 다시 치솟으며 물가 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국제 유가가 다시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엑스 ETFs의 로한 레디 연구이사는 “이번 감산 결정으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다시 오를 수 있다”며 시장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는 겨울철을 앞두고 에너지난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각국이 대응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물가 안정에 주력하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대통령 지시로 다음 달 추가로 10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시장에 배출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추가 조치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이미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로 올겨울 에너지 대란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독일은 공공건물 난방 온도를 19도로 제한했고 미관상 이유로 건물 외관이나 기념물에 불을 밝히는 것도 금지했다. 일부 도시에선 특정 시간대에 샤워를 금지하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선 에펠탑 등 주요 건축물의 조기 소등에 들어갔고 핀란드는 사우나를 1주일에 한 번만 하자는 에너지 절약캠페인을 펼친다. 네덜란드도 샤워를 5분 이하로 줄이자고 권장하고 있다.
다만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실제 원유 공급에 미치는 타격은 훨씬 적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석유 제재로 러시아에 경제적 압력을 가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전략도 약화시키고 있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OPEC+는 세계 원유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러시아와 사우디는 지난 몇년 간 오펙플러스를 통해 더욱 가까워졌다.
WSJ는 오는 12월5일 유럽의 러시아 원유에 대한 금수 조치와 유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러시아가 석유 판매량을 더욱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