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미국 소매업체들이 가격 정책을 재조정하는 가운데, 소비자 가격을 유지하겠다던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1200여 개 저가 상품의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약 2500개 품목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 데오드란트, 프로틴 쉐이크, 반려동물용품 등 1200여 개 생활 필수품군 가격이 평균 5.2% 올랐다고 보도했다. 반면 경쟁사인 월마트는 같은 품목의 가격을 평균 2%가량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존은 성명을 통해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들의 평균 가격이 눈에 띄게 오르거나 내리지 않았다”며 “고객에게 주는 우리의 가장 큰 가치는 가격의 상대적인 변화가 아니라 항상 저렴한 가격을 제공하려는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아마존은 앞서 트럼프발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급업체들에 10%가량 가격 인하를 요구하기도 했다. 관세로 제품 원가가 오르자 소비자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공급업체에 마진 양보를 강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가격 인상은 공급업체가 출고가를 올리지 않았음에도 소비자 가격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 표시가 붙은 미국산 제품에도 예외 없이 가격을 인상했다.
WSJ은 “아마존의 가장 저렴한 상품군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부분의 무역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틀 뒤인 2월 15일 하루 동안 가장 큰 폭의 가격 인상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WSJ가 추적한 제품 다수는 아마존의 ‘일상 필수품’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품목들로, 이 카테코리는 올해 1분기 기준 아마존의 미국 내 판매 물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아마존 공급업체 컨설턴트인 코리 토머스는 “아마존은 배송비가 얼마 안 되는 이윤까지 깎아먹는 구조라 저가 상품군에서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월마트에 대해선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수익 제품이 함께 팔리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전체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버드대 경제학자 알베르토 카발로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프라이싱랩(Pricing Lab) 연구진에 따르면 3월 이후 수입품 가격은 약 2% 상승했다. 카발로는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소매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더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많은 브랜드와 유통업체들은 정치적 반발을 우려해 가격 전략과 관련한 공개적 발언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아마존은 연초 저가 쇼핑 사이트 ‘하울(Haul)’에 관세 영향을 소비자에게 고지하려다 백악관이 이를 “적대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라고 비판하자 해당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월마트가 “관세 인상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발언하자, 기업들에 “관세를 감수하라(EAT THE TARIFFS)”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