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로봇의 일상 속 진출이 영화 속 장면과는 다른 모습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사람처럼 춤추고 권투를 하거나 달리기 기록에 도전하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달리, LA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로봇은 마트 진열대를 돌아다니며 상품 재고를 확인하는 등 실용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 LA 일부 식료품점에 도입된 이 재고 관리 로봇은 샌프란시스코 인근 벌링게임에 본사를 둔 심비 로보틱스가 개발했다. 음식 배달 로봇과 자율주행 차량 웨이모에 이어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물리적 AI 기술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소매업계에서는 재고 관리부터 마케팅, 계산 업무까지 자동화 기술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포천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소매 자동화 시장 규모가 2025년 280억 달러에서 2034년 77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심비 로보틱스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장 진열대를 점검하는 자사 로봇 3,000대 이상이 도입 계약을 맺었다. 랄프스의 모회사인 크로거도 수백 대를 운영하고 있다. 인디애나폴리스와 신시내티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한 뒤 최근에는 캘리포니아로 확대했다.
심비 로보틱스 대변인은 이메일을 통해 “진열대 정보를 분석하는 기술을 통해 매장 직원들이 재고가 부족하거나 품절된 상품을 더 쉽게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매장 운영과 고객 서비스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심비는 탤리 로봇이 직원들의 업무 부담을 덜어 고객 응대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도록 돕는다고 밝혔다. 회사는 지난 1월 최신 모델인 ‘탤리 4.0’을 공개했다. 이 모델은 최신 엔비디아 칩과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진열대 스캔 속도를 높이고 분석 정보를 제공한다.
탤리는 상품이 잘못된 위치에 놓여 있거나 재고가 없는 경우 직원들에게 알린다. 심비는 이 로봇이 “진열대 상태를 파악하도록 설계됐으며 사람을 식별하거나 추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회사는 최근 보도자료에서 탤리가 단순히 상품 수량을 세는 데 그치지 않고, 매장이 상품의 진열 위치와 가격을 최적화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로봇을 추가로 배치할수록 재고 현황과 상품 위치, 가격, 판촉 행사, 진열 상태 등 매장 운영 전반에 대한 분석 역량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LA 지역에서는 샌타모니카의 브리스톨 팜스 등 다른 소매점에서도 탤리를 도입했다. 전국적으로는 크로거와 로우스, 테스코, BJ’s 등에서도 이 로봇이 사용되고 있다.
랄프스 측은 지난해부터 실시간 재고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로봇 기술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다만 LA 지역 매장에 배치된 탤리의 정확한 대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크로거가 운영하는 스미스스 푸드 앤 드럭 매장 관리자는 링크드인 게시물을 통해 크로거 전체 매장에 배치된 로봇이 지난 8월 500대를 넘어섰다고 전했다.
크로거의 데이비드 케너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3월 실적 발표에서 회사가 AI 기술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로봇 도입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조들은 탤리가 직원들의 업무 시간을 줄이거나 일자리를 대체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심비는 자사 로봇이 직원들의 업무 시간을 주당 최대 50시간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 7월 워싱턴주와 오리건주 북동부, 아이다호주 북부 지역의 식료품점 노동자를 대표하는 전미식품상업노조(UFCW) 지부는 크로거 계열 프레드 마이어 매장에 탤리를 확대 도입하는 계획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노조는 성명에서 “노조원들은 정기적으로 재고 확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이 업무를 로봇에 맡기면 직장 내 결속이 약해지고, 임대료를 내기 위해 근무 시간이 필요한 직원들의 일감이 줄어들며, 복리후생의 안정성도 위협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버몬트 애비뉴와 애덤스 블루버드 인근 랄프스 매장에서 일하는 레이철 푸르니에는 탤리 로봇이 몇 달 전 갑자기 매장에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날 로봇이 나타나 매장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푸르니에는 자신과 동료들이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뿐 아니라 로봇이 직원 감시에도 활용될 수 있는지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셀프 계산대와 전자식 가격표가 이미 직원 수요를 줄이는 상황에서 자동화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걱정된다는 것이다.
푸르니에는 “이제는 재고 관리 업무까지 컴퓨터에 맡기고 있다”며 “대체 어디까지 하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노조 측은 로봇을 추가로 도입하기 전에 직원들과 충분히 논의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UFCW 770 지부의 캐시 핀 회장은 “직원들이 매장에 새로운 기술이 들어온 뒤에야 직장 내 중대한 변화를 알게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진열대 확인과 품절 상품 파악, 매장 상태 관리는 조합원들이 매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업무”라고 말했다.
크로거는 재고 관리 로봇과는 별개로, AI를 활용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향후 3년간 본사 직원 3,000명을 감원할 계획도 밝혔다.
일부 노조는 앞서 도입된 자동화 기술에도 대응해 왔다. 지난해 롱비치에서는 노조원들이 식료품점의 셀프 계산대 수에 비례해 직원 수를 늘리도록 하는 조례를 추진하는 데 힘을 보탰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전자식 가격표가 고객별로 서로 다른 가격을 적용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로봇 제조업체와 도입 기업들은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맡아 직원들이 다른 업무에 더 집중하도록 돕는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일부 고객들은 로봇이 늘어날수록 일자리가 줄어들고 사람 간 직접적인 소통도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드 시티에 거주하는 63세 제니퍼 불랑제는 새로 도입된 랄프스 로봇을 촬영한 영상을 소셜미디어 넥스트도어에 올리며 “쓸데없는 AI 때문에 일자리가 또 사라진다”고 비판했다.
불랑제는 앞으로 자동화가 덜한 매장을 이용할 생각이다. 주차장이 붐비거나 더 멀리 운전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트레이더 조를 더 자주 찾겠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앞으로 트레이더 조를 더 많이 이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성철 기자>sungparkknews@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