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에도 겨울 산을 찾는 주민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린 후의 주말에는 내셔널 포레스트 등에는 차량들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모두 설경을 구경하고 눈밭에서 뒹굴기 위해서다.
물론 스키장을 찾는 차량들도 많다.
눈에 반사된 자외선으로 인해 일시적 또는 반영구적인 시력 이상을 유발하는 각막 질환을 ‘설맹(雪盲)’이라고 부른다. 예방 가능한 질환으로 겁낼 필요는 없지만, 스키장에 가거나 눈이 많이 내린 산을 오를 때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 의료계에 따르면 고도가 높고 눈이 덮힌 산이나 스키장에서는 강한 자외선으로 인해 설맹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고도가 1000미터 상승할 때마다 태양과 가까워지면서 자외선에 대한 노출이 16%씩 늘어난다. 또 흙만 있는 땅이라면 자외선 반사율이 5~20% 정도에 그치지만, 눈이 덮여 있는 땅에서는 85~90%까지 올라간다.
백성욱 한림대성심병원 안과 교수는 “겨울은 여름에 비해 자외선과 햇빛의 세기가 강하지 않아 눈 보호를 등한시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겨울철 스키장에 가거나 눈이 많이 내린 산을 오를 때 태양의 자외선이 설원에 반사돼 눈을 자극할 수 있고 이런 빛 자극에 장시간 노출되면 안구의 각막·망막이 손상돼 시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겨울철 각막염 환자가 급증하는 이유도 설맹증과 관련이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겨울철 각막염 환자는 최근 3년간 2020년 25만7519명에서 2022년 30만6058명으로 약 19% 증가했다.
설맹증 증상은 대개 자외선을 쬔 후 수 시간 뒤 나타난다. 가벼운 경우 눈이 부시고 아파서 눈물이 나오고 눈을 뜰 수 없게 된다. 일부 각막 표면에 혼탁이 생길 때도 있다. 중증인 경우 시력이 저하되고 시야의 중심이 어둡고 희미하게 보인다.
백 교수는 “중증인 경우 망막이 빛으로 인한 화상을 입어 부종이 생겨 일시적 야맹을 일으키기도 한다”면서 “증상 발생 수시간 후에도 지속적인 시력 저하, 중심부 암점(시야에 까만 점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 있을 경우 안과 전문의를 찾아 진료를 받길 권다”고 말했다.
우울증을 앓아 일부 신경안정제를 주기적으로 복용하거나, 외상이나 안구 내 염증으로 동공이 확장된 경우 설맹증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눈에 반사돼 들어오는 자외선과 적외선으로 인해 설맹증이 야기되는데, 동공이 큰 경우 눈 내부로 들어오는 빛이 양이 많아지게 된다. 우울증 약 등 일부 신경안정제를 주기적으로 복용하는 경우 동공이 확장돼 있어 망막으로 들어오는 빛이 양이 증가해 쉽게 신경이 손상될 수 있다.
백 교수는 “무엇보다 각막염을 이미 앓고 있거나 망막·녹내장 질환이 있는 경우 설맹증으로 인해 시각적 불편감이 더 클 수 있어 예방에 특히 더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설맹증을 예방하려면 눈 덮힌 산이나 스키장 등에서 장시간 야외활동을 할 경우 반드시 눈 주위의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 고글이나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자외선에 일시적으로 노출되면 각막에 흡수돼 망막으로 보내지지 않지만, 장기간 노출되면 망막과 다른 부위에 2차 손상이 갈 수 있어서다.
백 교수는 “모자만으로 아래쪽에서 반사돼 들어오는 빛을 차단할 수 없다”면서 “다만 고글이나 선글라스를 사용할 때 UV(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고 색이 진해 차단 효과가 높은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득이하게 보호 장비를 갖추지 못했다면 휴식 시간을 충분히 갖고 빛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면서 “이때 녹지대와 눈 지대를 번 갈아서 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