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7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이 약 11개월 연기되면서 한국 축구대표팀을 이끄는 로베르트 모레노 임시 감독의 거취에도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겼다. 당초 아시안컵까지 대표팀을 맡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대회 일정이 바뀌면서 임시 감독 체제를 연장해야 할 명분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AFC는 3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2027 아시안컵 일정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2027년 1월 7일부터 2월 5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던 대회는 같은 해 12월 23일 개막해 2028년 1월 21일 막을 내리는 일정으로 조정됐다.
이번 결정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둘러싼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과 안전 문제, 항공 및 물류 차질 등이 배경이다. 참가 선수단과 관계자, 관중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라는 것이 AFC의 설명이다. 변경된 일정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최종 승인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대회 연기가 한국 대표팀의 감독 선임 계획까지 흔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모레노 감독은 2026 북중미 월드컵 이후 홍명보 전 감독이 물러나면서 지난 9월 대표팀 임시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대한축구협회는 9월부터 11월까지 예정된 A매치 6경기를 맡긴 뒤 성과를 평가해 2027년 아시안컵까지 지휘봉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계약 기간은 오는 11월 27일까지다.
그러나 아시안컵이 1년 가까이 미뤄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장 내년 1월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적 부담이 사라진 만큼 축구협회가 모레노 감독의 임기를 연장하기보다는 정식 감독을 새로 선임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커졌다.
모레노 감독으로서는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다. 대표팀을 맡아 선수들을 파악하고 전술적 색깔을 입히는 과정에 있었지만, 자신의 지도력을 충분히 평가받기도 전에 임시 임무가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모레노 감독은 9~10월 A매치 4경기에서 2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에콰도르를 3-0으로 꺾고 우루과이에 1-4로 패한 데 이어 베네수엘라와 0-0으로 비겼고, 우즈베키스탄을 2-0으로 제압했다. 가능성과 과제를 동시에 보여줬지만, 대표팀의 전술적 완성도와 조직력이 확실히 자리 잡았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남은 11월 A매치 2경기는 모레노 감독에게 사실상 마지막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대표팀은 13일 사우디아라비아, 17일 카타르와 평가전을 치를 예정이다. 이 경기에서 경쟁력 있는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정식 감독 후보로서 자신의 입지를 높일 수 있다. 반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임시 감독 체제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이제 단기적인 아시안컵 준비보다 장기적인 대표팀 운영 계획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12월로 예정된 대한축구협회 차기 회장 선거도 중요한 변수다. 정식 감독 선임은 단순히 지휘봉을 맡길 인물을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2030년 월드컵을 겨냥한 선수단 구성과 세대교체, 전술적 방향까지 함께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감독을 선임한다면 선수단을 충분히 관찰하고 자신의 축구 철학을 대표팀에 적용할 시간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아시안컵을 앞두고 서둘러 감독을 결정해야 했던 기존 상황보다 한국 축구에 유리한 조건이다.
다만 모레노 감독에게도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남은 A매치에서 확실한 경기력과 지도력을 보여준다면 정식 감독 후보로 경쟁할 수 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 임시 감독을 거쳐 정식 사령탑으로 승격했던 경험도 있다.
그렇지만 축구협회가 이번 기회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으려 한다면 모레노 감독과의 동행은 11월을 끝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아시안컵 연기는 모레노 감독 개인에게는 악재지만, 한국 축구 전체로는 장기적인 방향을 재정비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감독 교체 자체가 아니라 어떤 축구를 할 것인지, 그리고 2030년 월드컵까지 대표팀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이다.
모레노 감독의 거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대회 연기로 한국 축구는 더 이상 임시방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준연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