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소재 제9 연방 순회항소법원(9th U.S. Circuit Court of Appeals)은 지난 5일, 국제 기독교 구호단체 월드비전(World Vision)이 동성 부부 여성에게 제안했던 고객서비스직 채용을 철회한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종교단체의 고용 자율권과 성소수자의 평등권 보장을 둘러싼 법적·사회적 논란을 다시 촉발시키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따르면, 오브리 맥마흔(Aubry McMahon)은 2021년 1월 월드비전으로부터 시급 13~15달러의 고객서비스직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날 자신이 여성 배우자와 결혼했고 출산 예정임을 알리자, 월드비전은 내부 논의 후 사흘 만에 채용을 철회했다.
맥마흔은 즉시 소송을 제기했고, 시애틀 연방법원은 1심에서 맥마흔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 재판부는 “해당 직무는 후원자 응대와 통계 관리 등 세속적 성격이 강하다”며 월드비전의 채용 거부를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항소법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고객서비스 직원은 후원자와 기도하고 단체의 신앙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는다”며 “이는 월드비전의 선교 사명을 외부에 전달하는 핵심적 사역”이라고 밝혔다. 세 명의 판사는 만장일치로 월드비전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2012년 연방대법원의 호산나-타보르(Hosanna-Tabor) 판례를 근거로 했다. 이 판례에서 대법원은 종교단체가 일부 교직원에게도 ‘목회자 예외(ministerial exception)’를 적용해 차별금지법 적용을 피할 수 있도록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 고객서비스직까지 예외 범주에 포함되면서, 적용 범위가 크게 넓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판결은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매사추세츠와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19개 주는 맥마흔을 지지하며 “예외 범위가 확대되면 고용 차별 방지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17개 주와 보수 성향 종교단체들은 월드비전의 입장을 지지하며 “종교단체의 신앙적 자율권은 존중돼야 한다”고 맞섰다.
월드비전은 한국 교계와 한인 사회에서도 잘 알려진 국제 구호단체다. 한국 교회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고, 미주 한인 교회들도 꾸준히 후원과 참여를 이어왔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개인의 채용 문제를 넘어, 종교단체가 세속적 업무 영역에서도 고용 자율권을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인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나 복지 기관에서 교사나 직원 채용 시 신앙 기준을 적용할 경우 이번 판결이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성소수자 고용 평등 문제와 충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판결에 대한 한인 교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남가주 지역 한 교회 목회자는 “신앙 공동체가 내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신앙 가치에 맞는 직원을 뽑는 것은 자율권의 범주에 속한다”고 환영했다. 반면 한인 청년단체 관계자는 “종교적 이유라는 명분이 성소수자 차별로 이어진다면 교회는 사회적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대법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광범위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 사건인 만큼,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만약 대법원이 항소법원의 논리를 확정한다면, 종교단체는 교육·복지·구호 등 다양한 세속 영역에서도 더 큰 고용 재량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종교 자유 강화와 동시에 차별금지 원칙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판결은 종교적 자율권과 고용 평등이라는 가치의 경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미국 사회 전반, 그리고 한인 사회에도 다시 제기하고 있다.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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