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미 금융권과 이민자 사회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해당 조치가 시행될 경우, 많은 서류미비 이민자들이 은행 시스템 접근에서 사실상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월스트릿저널과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재무부가 주도하는 형태의 행정명령 또는 별도 조치를 통해 은행이 신규 고객은 물론 기존 고객에 대해서도 시민권 관련 정보를 수집하도록 요구하는 방안이 내부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비시민권자의 은행 계좌 개설을 금지하는 규정은 없으며, 계좌 개설 시 이민 신분 확인을 의무화하는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행 ‘고객확인제도(Know Your Customer, KYC)’에 따라 은행은 자금세탁 방지 및 불법 활동 차단을 위해 이름, 생년월일, 주소 등 기본 정보를 수집하고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으로 이를 확인한다. 또한 은행비밀법(Bank Secrecy Act)에 근거해 의심 거래를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민권 정보를 별도로 수집하거나 정부에 체계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의무는 없다.
이번에 검토 중인 방안은 이러한 기존 요건을 넘어서는 조치다. 내부 논의에 정통한 인사들에 따르면, 새 규정은 신규 고객뿐 아니라 기존 계좌 보유자에게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수백만 건의 계좌 관계에 대한 소급 검토로 이어질 수 있다. 여권 등 시민권을 입증하는 추가 서류 제출이 요구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미국 인구의 약 절반은 여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단순히 서류미비 이민자뿐 아니라 시민권자들까지도 행정 부담과 혼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제출 서류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단순 정보 수집에 그칠지, 계좌 폐쇄로 이어질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금융권은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은행 경영진들은 전례 없는 범주의 서류를 고객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점과, 사실상 연방 이민정책 집행에 직접 관여하게 되는 구조에 대해 부담을 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실행 불가능하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모든 고객의 시민권을 일일이 검증하는 작업은 물리적으로 복잡하고 비용 부담이 막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은행은 이미 여권이나 사회보장번호(SSN)를 수집하고 있지만, 시민권 여부를 공식적으로 판정하거나 기록하도록 의무화되어 있지는 않다. 더구나 여러 대형 금융기관은 SSN 없이도 계좌 개설을 허용하고 있다. 만약 시민권 증명이 의무화될 경우 외국인 고객 이탈과 예금 감소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대출 여력 및 지역경제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법적 경로로는 재무부가 FinCEN을 통해 은행비밀법 권한을 활용해 신원확인 요건을 수정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이 경우 정식 규제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공화당 톰 코튼 상원의원은 서류미비 이민자의 은행 접근을 차단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히며, 은행 서비스는 “법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특권”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논의는 트럼프 행정부의 광범위한 이민 단속 강화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 최근 연방 서식의 시민권 확인 절차 강화, 일부 복지 혜택 제한, 기관 간 정보 공유 확대 등이 추진됐으며,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원격 기술과 현장 감시를 활용한 추적 프로그램도 확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행정부는 동시에 보수 진영을 상대로 한 이른바 ‘디뱅킹(debanking)’ 관행을 비판해 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입 사태 이후 거래 관계를 종료한 JP모건 체이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은행 측은 해당 소송이 근거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은행 계좌에 대한 시민권 검증 의무화가 현실화될 경우, 이는 단순 금융 규제 변경을 넘어 미국 내 이민 정책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조치가 될 가능성이 있다. 금융 시스템을 통한 간접적 이민 통제라는 점에서, 그 파장은 이민자 사회는 물론 전체 금융 산업에 광범위하게 미칠 전망이다.
<김상목 기자> editor@knews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