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약 3000억 달러(약 440조원)의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증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세일즈포스, 오라클, 서비스나우 등 소프트웨어(SW) 기반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폭락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가총액 3조 달러 선이 무너졌고, 지난해 7월 최고치 대비 30% 이상 하락했다.
도화선은 지난 1월 말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이 내놓은 ‘클로드 코워크(Claude Cowork)’. 단순한 AI 챗봇이 아닌, 법률 검토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수십 명의 인력이 처리하던 업무를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AI 에이전트이다.
이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20년간 소프트웨어 업계를 지배해온 ‘사용자당 구독료(SaaS)’ 수익 모델이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발 SW 종말론 확산…SaaS 비즈니스 모델 뿌리째 흔들려
클로드 코워크는 앤트로픽이 1월 중순 맥OS용 데스크톱 애플리케이션으로 출시한 AI 에이전트 도구다. 개발자용 ‘클로드 코드(Claude Code)’를 일반 직장인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한 버전으로, 사용자가 작업을 지시하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여러 단계를 거쳐 실행한다.
앤트로픽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법률, 금융, 영업, 마케팅 등 특정 산업에 특화된 11개 오픈소스 플러그인을 공개하자 자본 시장은 한순간 충격에 빠졌다. 법률 문서 검토, 재무 분석, 고객 관계 관리(CRM) 등 각 분야의 전문 소프트웨어가 수행하던 핵심 기능을 AI 에이전트가 대신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 시티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AI가 SW를 희소 자산에서 누구나 찍어낼 수 있는 저렴한 공공재로 전락시킬 위기”라며 “기존 SW 기업들의 수익 모델 자체를 붕괴시키는 시장 파괴적 현상의 시작”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법률 문서 관리 업체 리걸줌(LegalZoom)은 지난 4일(현지시간) 주가가 20% 급락했고, 법률 정보 제공업체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의 주가 역시 15.83% 하락했다. IT 서비스 아웃소싱 기업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SW 업종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는 4월 이후 최악의 하루를 기록하며 6% 가까이 떨어졌다.

◇ “사용자 수 기반 요금제 시대 끝났나”…오픈AI·구글 가세
시장의 공포는 SW 산업의 수익 구조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실존적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미국 벤처캐피털 베세머벤처파트너스(BVP)는 2025년 ‘AI 현황(State of AI)’ 보고서에서 “과거에는 SW가 인간을 돕는 도구였기에 머릿수(좌석 수)대로 돈을 받았지만, 이제 AI가 직접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되고 있다”며 “전통적인 SaaS의 사용자 수 기반 요금제는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명의 직원이 월 수십 달러를 내고 협업 툴이나 CRM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던 기존 모델에서, AI 에이전트 하나가 여러 직원의 업무를 대체하면서 기업들이 굳이 여러 개의 유료 구독을 유지할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앤트로픽의 클로드 코워크는 월 20달러(프로 요금제) 또는 100~200달러(맥스 요금제)로 법률 검토, 재무 분석, 문서 작성, 데이터 처리 등 다양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이는 각각의 전문 SW를 개별 구독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앤트로픽의 공세에 오픈AI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오픈AI는 2월 3일 에이전트형 코딩 모델 ‘GPT-5.3-코덱스(Codex)’를 공개하며 맞불을 놨다. 코드 작성과 리뷰를 넘어 개발자가 컴퓨터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작업을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구글도 ‘제미나이 코드 어시스턴트’를 통해 코드 생성, 자동완성, 디버깅 기능을 통합개발환경에 제공하고 있으며, 다단계 작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트형 기능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월가에서는 AI 에이전트가 기존 SW 기업들의 ‘사용자당 구독료’ 기반 사업 모델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AI가 개별 SW를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여러 업무 기능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할 경우, 고객 이탈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무력감 느꼈다”는 샘 알트먼에 개발자들 분노
이 같은 시장 혼란 속에서 오픈AI의 샘 알트먼 CEO가 소셜플랫폼 엑스(X)에 올린 발언도 논란이 됐다. 그는 코덱스 앱을 시연한 경험을 언급하며 “AI가 스스로 게임을 만들고 배포하는 것을 보며 경이로움과 동시에 쓸모없음과 슬픔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기술적 실업을 가속화시킨 장본인이 마치 제3의 관찰자처럼 무력감을 운운하는 것은 위선이자 기만”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AI 윤리 연구자인 워싱턴대 에밀리 벤더 교수는 “자신이 만든 도구가 노동자의 삶을 파괴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며 “알트먼의 발언은 가해자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전형적인 악어의 눈물”이라고 비판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앤트로픽 쇼크’를 AI 산업의 초점이 모델 성능 경쟁에서 실제 업무 대행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는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경쟁의 본질은 누가 더 똑똑한 AI를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기업의 일을 AI에게 맡기게 만들 수 있느냐에 있다”며 “에이전트형 코딩 AI 경쟁이 SW 산업의 판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K-News LA 편집부 editor@knews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