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백악관 안에는 조그마한 퍼팅 그린이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당대 최고의 전문가에게 부탁해 이 퍼팅 그린을 만들었다. 그 주인공이 골프장 코스 디자인의 거장으로 통하는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RTJ)다.
RTJ는 “자연 그대로 설계한다”라는 자신만의 철학에 따라 전세계 280여개의 명품 골프 코스를 설계해왔다. 미국 캘리포니아 페블 비치에 위치한 스페니시베이, 지난해 최나연 프로가 LPGA투어 은퇴 경기를 했던 BMW레이디스 챔피언십 경기장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CC가 그의 작품이다.
베트남 유명 관광지 다낭에서 차로 40분거리에 위치한 호이안 해안가에 ‘호이아나 쇼어스 골프 클럽(파71·7004야드)’이 있다. RTJ가 스스로 “골프의 위대한 교향곡”이라고 평가하며 야심차게 디자인한 링크스 코스가 골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호이아나 쇼어 골프 클럽은 이미 ‘베트남 최고 골프 코스’라는 영예를 얻었고, 베트남 골프&레저 어워드에서 ‘베트남 탑 10 골프 코스’로 선정됐다.
이곳은 지난 2020년 개장 하자마자 코로나 팬데믹을 맞았다. 베트남 정부의 강도 높은 격리 정책으로 그동안 해외 골퍼들의 방문이 어려웠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본격적인 해외 손님맞이로 분주하다.
베트남관광청은 지난해 8월 ‘다낭 골프 관광축제’를 여는 등 해외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이다. 기자가 1월초 방문했을 당시 평일 새벽 6시 티타임부터 예약이 꽉 차 있었다.
클럽하우스에서 출발하면서 살펴보니 앞 뒤 팀을 포함해 대부분 한국 손님들이었다. 최근 입소문을 타면서 한국 골퍼들에게 ‘꼭 가보고 싶은’ 동남아 명품 골프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탁 트인 해안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따로 심은 나무가 한 그루도 없고 이곳 해안가 모레를 이용해 언덕과 코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곳곳에 벙커가 눈에 들어온다.
전반 9홀에서는 모래 언덕의 향연이 펼쳐진다. 3번 홀은 페어웨이 오른쪽에 있는 동굴 같은 ‘공룡 벙커’로 플레이어를 유인한다. 과감히 이 벙커를 넘기는데 성공하면 보상이 따른다. 30-40미터의 거리 이득을 보며 그린 앞에 도착하게 된다.
9번 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꺾인 도그렉 홀로 플레이어들에게 전반 9홀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그린 라이가 스코어를 좌우하게 만든다.
10번 홀에 다다르면 바다 저 멀리 참 섬(Cham Islands)이 한 눈에 들어온다. 12번 홀에서는 본격적인 바닷가 바람의 영향권에 접어든다.
짧은 거리의 파3(119야드) 14번홀 같은 경우 그린 안에 깊은 계곡이 있는 듯 움푹 패인 가공할 라이가 스리 퍼팅마저 감사하게 만든다.
기자는 운좋게 어프로치 샷이 홀컵에 붙이면서 보기로 마무리한 반면 온 그린이 성공한 동료는 4퍼팅으로 더블 보기를 기록하고야 말았다.
후반 15번홀 그린으로 다가서자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 손이 갔다. 눈앞에 펼치지는 수평선에 걸친 참 섬들의 모습과 해변가에 몰아치는 파도, 그린 잔디의 푸른색이 어우러져 왜 후반 15번홀이 시그니처홀 인지 실감케 한다.
마침 그린 주변 언덕 위에 공이 떨어져 그 곳에서 어렵게 트러블 샷을 날리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대로 멋진 그림 엽서가 됐다. 이어지는 16번홀은 해변을 따라 펼쳐져 있으며 전체 코스 중 가장 다채로운 모습을 자랑한다.
16번 홀은 버려진 양식장 및 모래언덕을 매립해 만들어진 홀이어서 해안 사구, 복구된 해변 및 토종 해안 식물의 재건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신비로운 홀이다.
해안가 풍경에 빠져 스코어를 잊고 17번홀까지 걷다보면 어느새 라운드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홀에 도달하게 된다.
나무 숲의 방해가 없으니 모레 언덕과 벙커로 난이도를 어렵게 만들어놨다. 한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해안가 링크스 코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골프의 발상지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의 올드 코스를 닮았다.
잔디 상태는 최상이었다. 관리가 소홀한 동남아 골프장에 가면 듬성듬성 잔디와 모레밭을 연상케하는 느린 그린으로 인상을 구기게 만드는데 이곳은 전혀 딴 판이다. 웬만한 한국 골프장보다 그린 상태는 더 좋아보였다. 베트남 최고 골프장 가운데 하나로 분류될 만 하다.
RTJ는 “골프 코스의 진정한 평가는 ‘얼마나 어렵게 설계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다시 코스에 나가고 싶도록 만드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 호이아나 쇼어스 GC. 비록 평소보다 타수가 더 나오긴 했지만 꼭 다시 찾고 싶은 ‘동남아의 페블비치’였다.
리조트·카지노 갖춘 골프리조트
이곳에는 다이닝, 쇼핑, 카지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호이아나 호텔 앤 스위츠, 호이아나 레지던츠, 뉴월드 호이아나 호텔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다 2024년까지 2개의 호텔급 럭셔리 숙박 시설이 더 들어올 예정이다.
호이아나 프리미어 리워드를 잘 알아두는 것도 꿀팁이다. 호이아나 프레스티지 회원이 되면 이곳 리조트, 골프, 레스토랑, 리테일 숍 이용시 10% 할인을 받는다. 엘리트 회원은 15%, 인피니티 회원은 최대 20%까지 할인 폭이 커진다.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호이안 시내의 명물 오행산을 둘러보고, 투본강의 코코넛 바구니 배를 타보고 해가 기울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이안 올드타운의 야시장을 찾아가보자. 포근하고 친근한 호이안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