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인플레이션 감축법(the Inflation Reduction Act)’이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돼 한국산 자동차 업체들에 초비상이 걸렸다.
전기차 보조금 혜택에서 제외되는 한국 주요 완성차업체들은 보조금을 받을 수없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반면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하게 된 태양광이나 배터리업계는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하원을 통과한 총 7400억 달러 규모의 인플레 감축법에 16일 서명했다.
이 법은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에 3690억 달러, 건강보험개혁법 보조금에 향후 2년 간 640억 달러 상당을 투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특히 이 법은 자동차 업체별로 연간 20만대까지만 1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던 한도를 없애는 대신 북미 지역에서 생산(최종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구매보조금 혜택을 주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는 자동차업체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한국 완성차업체들도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국 완성차업체 5개사 중 전기차를 북미에 수출 중인 현대차와 기아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는 지난해 아이오닉 EV, 코나 EV, 아이오닉 5 등 총 1만855대, 기아는 쏘울 EV와 니로 EV 등 8735대를 지난해 미국에 수출했다.
또 올해 1∼7월에는 전기차 수출이 더욱 늘어 현대차의 경우 GV60까지 포함해 총 1만8328대, 기아는 EV6를 포함해 총 2만1156대를 판매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25년까지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생산공장을 짓기로 한 상황이지만 그 전까지는 국내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수출해야 하는 만큼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기아는 직접적인 반응은 내놓지 않고 있지만 다소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이를 대신해 국내 완성차업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해당 법에 반발하는 서한을 미국 하원에 전달하기도 했다.
KAMA는 해당 서한에서 “인플레 감축법 중 전기차 세제지원법안에 북미산과 수입산 전기차와 배터리 등을 차별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매우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한국시장에서 한국차뿐만 아니라 미국산 수입전기차에도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동등하게 대우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르면 수입품 대신 국내상품의 사용을 조건으로 지급되는 보조금 지급이 금지돼 있으므로 한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세제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에 국내 태양광업체와 배터리업체들은 반사이익을 얻을 전망이다. 이번 인플레 감축법에는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업체 등에 600억 달러 규모의 세액공제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세부적으로는 ▲태양광 패널을 포함한 가정용 에너지 효율 관련 세액 공제(90억 달러)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배터리 생산 및 필수 광물 정제 관련 세액 공제(300억 달러)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청정기술 생산기지 건설 관련 투자 세액 공제(100억 달러) 등이다.
이에 따라 미국 내 태양광 모듈 공급 1위인 한화솔루션이 많게는 조 단위 세제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미국에 공장이 있는 태양광업체는 국내에서 자사가 유일하다. 또 미국 시장에서 태양광을 생산하는 업체들에 인센티브를 주는데, 그런 업체들도 별로 없다”며 “내년 공장 증설까지 포함하면 연간 3.1GW(기가와트)를 생산하게 된다. 이는 미국 생산량의 30%가 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솔루션은 미국에 1.7GW 규모의 태양광 모듈 설비를 보유하고 있고 지난 5월에는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 약 2000억원을 투자해 1.4GW 규모의 태양광 모듈 공장을 증설 중이다. 한화솔루션은 이번 법 통과를 계기로 추가적인 투자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도 반사이익을 얻을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해 약 15조원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GM과 3개의 미국 합작공장을 포함해 스텔란티스와 캐나다 합작공장까지 북미에서만 4건의 합작공장을 건설 중이며 미국 미시간 단독공장도 증설하고 있다. 2025년까지 북미에서만 확보되는 생산능력은 200GWh(기가와트시)가 넘는다.
SK온은 포드,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합작사를 설립해 미국에서 생산시설을 건설 중이다.
한국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이 법안 통과 이후 중국산 배터리업체들이 견제될 것으로 본다. 한국산 배터리가 미국 시장에서 스탠스가 좋은데 향후 K-배터리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지 않을까 한다”며 “국내 배터리업체가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배터리업계는 해당 법 통과로 CATL과 BYD(비야디) 등 중국 경쟁사들을 견제할 수 있게 됐지만 2024년까지 중국 외 원자재 공급처를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K-배터리에 호재이지만, 광물 및 부품에 규제가 있는 상황이고 규제가 명확하지 않아서 대응을 해야 할 것”이라며 “배터리 부품 자체는 국산화가 많이 돼 있지만, 광물 가공·제련의 경우 중국업체가 많아서 해당 법이 어떤 규제를 하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