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부 장관은 장기화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과 관련해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일원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 보도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날 자신의 저서 ‘리더십: 6가지 세계 전략 연구'(Leadership: Six Studies in World Strategy) 출간 기념으로 진행된 WSJ 인터뷰에서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행동으로 옮겼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공식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번 전쟁의) 여파에 따라 나토 회원국으로서 취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우크라이나가 한 때 러시아 영토에 속했던 과거 역사를 거론하며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를 그들의 영토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한 때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독립을 찬성했지만, 지금 (우크라이나의) 최고 역할은 핀란드와 같은 것”이라며 “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함으로써 안정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키신저 전 장관이 언급한 우크라이나에게 핀란드와 같은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은 팽창하는 나토와 러시아 사이의 완충 지대로서의 지정학적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키신저 전 장관은 리처드 닉슨 및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인물로, 국제관계에서 현실주의적 접근법을 취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과거 핀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국을 침공한 옛 소련을 상대로 저항했다가 영토 11% 가량을 소련에 내어주는 조건으로 평화 협정을 맺고 외교적 중립노선을 택했던 ‘핀란드 화(化)’를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으로도 읽힌다.
‘핀란드 화’를 통해 70년 가량을 중립노선을 지켜왔던 핀란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나토 가입 절차를 밟고 있는 만큼, 우크라이나 역시 직접 가입과는 무관하게 개념적으로나마 나토 일원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게 이니겠냐는 것이다.
‘핀란드 화’는 약소국이 자국의 주권을 보장받는 대신 인접한 강대국의 외교정책을 반대하지 않는 외교안보 노선의 대명사로 평가받아 왔다. 초강대국의 위협에 맞서 국익을 지키기 위한 냉철한 현실주의 노선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자발적 눈치보기라는 부정적 해석이 엇갈린다.
키신저 전 장관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름반도 강제 병합 때도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핀란드와 비슷한 노선을 추구해야 한다”며 핀란드 화를 주문한 바 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지난 5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 일부를 양보해야만 전쟁이 끝날 수 있다며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구의 일부는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대가로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양보함으로써 타협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영토 양보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한편 키신저 전 장관은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등 6명의 전직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분석한 저서를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