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하루 200만 배럴 감산 발표에 미국이 발끈하고 나서면서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위협했으나 미국 소비자들의 고통 없이 미국이 보복할 수 있는 조치는 사실상 없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4일 한 기고문에서 강조했다. 기고자는 “사우디 주식회사” 이익과 권력을 추구하는 아랍 왕국”이라는 책의 저자인 엘런 왈드 박사다.
미 정부가 공언하는 대로 사우디에 보복한다면 이는 미국 중동정책에 진정한 신기원이 될 것이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역대 미 정부가 사우디에 유가와 관련해 심각한 보복조치를 취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미국 정부가 만류하는데도 사우디가 감산을 결정함에 따라 유가가 배럴당 80달러에서 90달러로 뛰었으나 절반 정도 다시 내렸다.
미 백악관은 OPEC+의 감산 결정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움직임이라고 규정하지만 사우디는 정당하고 순수하게 경제적 이유에서 이뤄진 결정이라고 강조한다. 세계 경제 침체에 따른 석유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데 따른 결정이라는 것이다. 미 에너지정보국(USEIA), 국제에너지기구(IEA)도 OPEC와 마찬가지로 10월부터 12월 사이에 석유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사우디는 앞으로 6개월에서 9개월 동안 경제가 침체되면서 유가가 폭락할 것으로 전망한다. 2008년 경제 위기 당시 유가가 9월 배럴당 100달러에서 12월 40달러로 폭락했다. OPEC가 추가하락을 막으려 시도했으나 사우디가 러시아의 감산 설득에 실패하면서 배럴당 32달러까지 떨어졌다. 이처럼 유가 변동이 극심해 산유국들은 피해를 입는다. 사우디는 이번에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감산을 결정한 것이다.
OPEC+ 회원국들은 현재 할당된 하루 420만배럴보다 적은 하루 360만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회원국들은 더 이상 크게 감산하기 어렵다. 감산 발표는 사실상 시장을 움직여 회원국들의 이익이 감소하는 걸 막기 위한 구두정책인 셈이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석유장관은 OPEC= 회원국들이 하루 최대 100만 배럴을 감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상황이 이런 데도 미 당국자들은 사우디의 결정에 실망을 표시했다. 중간선거가 임박했는데 미국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말이다. 지난 3월31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유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하루 1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했다. OPEC+의 감산 결정은 이 정책이 초래한 측면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감산 결정에 맞춰 겨울 동안 간헐적으로 전략비축유를 방출할 것이다.
사우디 정책으로 미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때마다 미 정부는 여러 방식으로 대응했었다. 1973년 10월 닉슨 정부가 아랍-이스라엘 전쟁 중 이스라엘에 군사적 지원을 재개하기로 결정하자 OPEC의 아랍 회원국들이 보복조치로 미국과 동맹국들에 석유 금수조치를 취하면서 유가가 7배로 뛰었다. 당시의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고공행진은 역대 가장 길었다.
닉슨 정부가 사우디,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에 파병해 유전을 장악하는 보복을 검토했으나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금수에 따른 보복조치는 없었으며 문제는 1974년 외교적으로 해결했다.
1999년 3월 몇 년 동안 이어진 저유가로 사우디의 적자가 1300억달러에 달하자 OPEC과 비OPEC 회원국과 함께 감산을 추진하면서 유가가 1999년 1월부터 이듬해 중반까지 거의 3배 뛰었다. 빌 클린턴 정부는 보복 조치 대신 외교적 해결을 추진했고 성공했다.
사우디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오래도록 사우디와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았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석유 시장을 안정시키고 냉전 시대 중동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고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에 맞대응하려는 것이었다.
상원에서 석유생산수출카르텔금지법이 논의되고 있다. 미 법무부가 OPEC 회원국을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화를 달랠 수는 있을지라도 미국 소비자들을 해칠 수밖에 없는 법안이다.
카르텔금지법은 미국이 OPEC+ 회원국의 미국내 자산을 압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우디가 미국에 보유한 최대 자산은 텍사스주 아서항에 있는 모티바 정유소다. 사우디 아람코사 소유인 이 회사는 미국에서 가솔린과 디젤 등 석유제품을 가장 많이 생산한다. 미국 정유회사들의 정제 능력은 간당간당해서 모티바가 생산을 방해를 받으면 미국 소비자와 경제가 큰 타격을 받는다.
미국이 국제 석유경제의 일원이기에 미 정부가 미 소비자들을 해치지 않고 사우디를 법적으로 보복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가장 효과적인 대응 조치는 미국의 석유 및 천연가스 산업을 부양하는 규제 완화다. 그러면 국제 유가를 낮춰 사우디 석유 수입을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에너지 및 환경 정책과 정면 충돌해 채택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정책이다.
수십년 동안 사우디 왕실은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이미지를 구축해 통치를 강화하는데 활용해왔다. 바이든 정부는 사우디에 이 관계가 사라질 수 있음을 압박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의 군수물자 수출을 공개적으로 억제, 지연, 차단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사우디에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선 안 된다. 현상을 깨트려 미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되면 미국 정치인들에게도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