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대배심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을 기소키로 결정하면서 큰 파장이 일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지난 50년 동안 무수히 많은 조사와 수사를 받았지만 살아남으면서 “법률적으로 무적”이라는 평판까지 받고 있다.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워싱턴포스트(WP)가 30일 트럼프가 치러온 각종 송사를 정리했다. 다음은 기사 요약.
트럼프는 크고 작은 사건으로 수사를 받아왔다. 작게는 뉴욕주법을 위반해 로비를 벌인 의혹부터 크게는 2016년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에 관여했다는 의혹까지 받았으나 처벌받은 적은 없으며 두 차례 탄핵 대상에 오르기도 했지만 살아남았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트럼프는 50년 전에도 기소된 적이 있었다. 당시 아버지와 함께 아파트 임대사업을 하면서 인종차별을 금지한 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20년 동안 트럼프 오가니제이션(Trump Organization)에서 근무한 바버라 레스는 “트럼프는 절대 겁내지 않는다. 자신이 법 위에 있다고 확신한다. 위기 대처에 능하고 소송 당하는 일을 피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 주변 인물들은 트럼프가 자신에 대한 기소로 자신의 지지 기반이 강화돼 그를 싫어하는 유권자들조차 동정심에서 자신에게 투표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조 태코피너 트럼프 변호사는 MSNBC 방송에서 “이번 사건이 트럼프를 백악관으로 보낼 것이다. 저들이 사법 기관을 유린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이다. 저들이 유권자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번 사건 이외에도 3가지 수사를 받고 있다. 조지아주 투표결과를 뒤집으려 시도한 혐의를 조지아주 검찰이 수사하고 있으며, 연방 특별검사가 2021년 1월6일 의회폭동을 사주한 혐의를 수사하고 있고, 연방수사국(FBI)이 기밀문서를 플로리다 자택으로 빼돌린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트럼프는 50년 전 흑인 세입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혐의로 기소됐을 당시 처음에는 주장 자체를 부인하다가 나중에 몰랐다고 했고 뒤에 변호사를 내세워 당국이 “게슈타포식 허위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자신이 포르노 스타 스토미 대니얼스와 성관계를 한 적이 없다며 대니얼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 그는 대니얼스에게 입막음용으로 13만 달러를 지불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가 다시 지불 사실을 알았을 수도 있지만 마이클 코언 변호사에게 지불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President Donald J. #Trump "Either the #DEEPSTATE destroys #America, or WE destroy the Deep State." #TrumpRally #TrumpWacoRally #TRUMP2024ToSaveAmerica pic.twitter.com/twkb6O11JS
— CBKNEWS (@CBKNEWS121) March 25, 2023
마침내 스티븐 청 트럼프 대변인은 30일 저녁 발표한 성명에서 “러시아, 러시아, 러시아부터 뮐러 사기꾼(특검을 가리킨다)과 두 차례의 가짜 탄핵 시도, 나아가 마라라고 압수 수색까지,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하기 전부터 수사하고 공격해왔고 지금까지 실패했다. 민주당이 다시 나서서 ‘핵단추’를 누르고 불명예스러운 혼외정사를 했다면서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을 무시하는 트럼프의 태도는 그의 사업 및 정치 이력과 인간관계에서 비롯한다. 스스로 전문성이나 규칙보다 본능과 육감을 중시한다고 말하고 유명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며 미국인들은 대부분 법을 위반했을 지라도 성공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해왔다.
오랜 측근들은 트럼프가 자신의 사업과 사생활에 대한 수사가 정치적 동기에 따른 것이며 어떤 배심원이라도 그가 불공평하게 공격당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전한다.
또 TV 방송이든 법정이든 정치 토론장이든 언제든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015년 인터뷰에서 대선 토론회 리허설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난 진 적이 없다. 토론에 능하면 이기고 아니면 지는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소송에서 이길 자신을 보이는 건 두 사람으로부터 얻은 경험 때문이다. 우선 뉴욕의 저명 부동산업자였던 아버지 프랭크 트럼프다. 그는 민주당 당직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변호사들을 잘 활용했다. 다음은 뉴욕 부동산 업계 거물이던 로이 콘(뒤에 징역을 살았다) 변호사다. 그는 검찰을 궁지로 모는 법을 트럼프에게 가르쳤다.
트럼프는 27살이던 1973년 아버지와 함께 뉴욕의 회원제 나이트클럽에서 로이 콘을 만났다. 흑인 세입자 차별 수사를 받을 때였다. 트럼프는 자서전 “트럼프: 협상의 달인”이라는 책에서 처음에는 나이트클럽 입장이 거부됐으나 유부녀에게 수작을 걸지 않는다고 약속한 뒤 회원이 됐다고 밝혔다.
콘과 첫 만남에서 트럼프는 “변호사가 싫다.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타협하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콘이 “법정에서 악마처럼 싸우라”면서 트럼프가 평생 활용해온 대처법을 알려줬다. 공격받으면 반격하고 힘으로 압도하라는 교훈이다.
콘은 트럼프를 대리해 정부를 상대로 1억 달러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법정에서 트럼프는 주거 인종차별법을 “몰랐다”고 주장하며 검찰에 맞섰다.
그의 반론이 법정에서 기각되자 콘과 트럼프는 재판을 2년 이상 끌었고 마침내 트럼프가 잘못을 시인하는 화해조정을 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유명해지면서 나쁜 일이라도 “사업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아 싸움닭이 됐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후 지난 50년 동안 트럼프는 카지노 사업 실패 관련 소송, 학생 부정 입학을 이유로 트럼프대를 폐쇄하려는 주 정부의 소송을 거쳐 두 차례의 의회 탄핵 시도에서 살아남았다.
대니얼스 사건과 관련해 트럼프의 대응은 콘 변호사에게 배운 그대로다. 60살일 때 27살인 대니얼스가 연예인 골프대회에서 만나 정사를 벌인 사실을 부정하는 것부터 시작한 것이다.
트럼프는 스스로 억만장자 플레이보이로서 수많은 톱 모델들과 데이트했음을 자랑해왔다. 3번 결혼하는 와중에 휴 헤프너의 플레이보이 맨션을 드나들고 미인대회 수상자들과 사진을 찍고 미인대회를 직접 운영하기도 한 트럼프는 성희롱이나 정사를 벌였다면서 소송을 건 여성들과 수많은 법률분쟁을 겪었다.
대부분 입막음 비용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대니얼스는 트럼프 변호사 코언으로부터 2016년 대선 유세가 한창일 때 정사를 벌인 사실을 공표하지 않는 조건으로 13만 달러를 받았다고 2018년 폭로했다.
트럼프는 뒤에 코언에게 13만 달러를 보상했음을 시인하면서 “거짓 혼외정사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성적 방종은 그의 인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최근과 다른 정치와 연예인을 구분하는 사회 분위기 덕분이었다. 2016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원들조차 3명 중 1명이 혼외정사 문제로 투표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고 공화당원은 2명중 1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듬해인 2017년에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대니얼스 사건은 트럼프의 혼외정사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거 부정에 초점이 있는 사안이다. 조지아주 선거 결과 개표 방해 및 1월6일 의회폭동 선동혐의보다 앞서 대니얼스 사건이 먼저 기소된 것은 순전히 검사의 성향에 따라 이뤄진 일이다.
트럼프의 과거 송사 경험을 잘 아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용용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파산하거나 처벌당할 것을 내심 걱정한다고 전한다.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사건을 조사한 뮐러 특검 보고서 끝 부분에는 트럼프가 “이런, 정말 끔찍하다. 대통령을 할 수 없게 됐다. 정말 망했다”고 말한 대목이 인용돼 있다.
1990년 그에게 32억 달러를 빌려준 30개 은행들이 집과 보트, 별장을 차압했을 때 “겁을 먹었다”고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의 레스 변호사가 말했다. “떠벌리는 걸 멈추고 겁을 내며 위축된 것을 우리 모두 봤다”고 했다.
그러나 30년 이상 트럼프가 잘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건들을 헤쳐나가는 것을 지켜본 레스 변호사는 트럼프가 이번에도 헤쳐 나갈 것으로 본다.
레스 변호사는 “뮐러 특검이 물러났듯이 검찰은 트럼프를 끝까지 소추할 용기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