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권력서열 3위에 해당하는 하원의장이 3일 역사상 처음으로 구성원들에 의해 해임됐다.
케빈 매카시(공화·캘리포니아) 하원의장은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 주류의 지지를 받았으나, 당내 강경파와 민주당의 합심에 자리를 빼앗겼다. 극우성향의 공화당 강경파는 불과 8표를 통해 수장을 갈아치우는데 성공했다.
미 하원은 이날 매카시 의장 해임결의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해 찬성 216표, 반대 210표로 통과시켰다.
표결에 참여한 민주당 의원 208명은 전원 찬성표를 던진 가운데, 공화당에서도 법안 발의자인 맷 게이츠(플로리다) 의원 등 8명이 이탈하면서 과반을 채웠다.
앞서 매카시 하원의장 해임결의안을 연기하는 안에 대해서도 투표가 진행됐으나 찬성 208표, 반대 218표로 부결됐다.
미국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미 헌정 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매카시 의장은 지난 1월 취임 후 9개월 만에 강제로 끌어내려졌다.
하원의장직은 공석이 됐고, 매카시 의장 취임당시 비공개로 제출한 명단에 따라 패트릭 맥헨리 의원(공화·노스캐롤라이나)이 임시로 의장직을 수행한다. 다만 임시의장은 실질적 권한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원은 재차 의장을 뽑아야하는 상황에 놓여 의회 업무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미 의회는 셧다운을 막기 위해 임시예산안을 통과시킨 만큼 내달 중순까지 새로운 예산안에 합의해야 하는데, 의장 공석이 이어지면 예산 협상에도 지장이 빚어질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매카시 의장이 이끌고 있는 공화당 내부에서 촉발됐다.
공화당 강경 우파 모임 ‘프리덤 코커스’의 게이츠 의원 등은 하원의 내년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은 물론 매카시 의장과도 꾸준히 갈등을 빚었다.
매카시 의장 주도로 셧다운 전날 임시예산안이 통과하자 불만이 극에 달했고 지난 2일 밤 의장 해임결의안을 하원에 공식 발의했다. 매카시 의장이 내년 예산안 협의 과정에서 민주당과 결탁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이 소수에 불과한 만큼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었지만, 민주당이 예상외로 강경한 입장을 굳히면서 사안이 심각해졌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회의 끝에 해임안에 찬성하기로 당론을 모았다.
매카시 의장은 민주당에 손을 내밀기보다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며 선을 그었고, 이날 오후 곧바로 표결이 진행되도록 했다. 표결은 법안이 발의된 후 48시간 이내에 진행되면 되지만, 오히려 속전속결로 진행한 것이다.
이는 매카시 의장이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되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스스로 해임 시점을 앞당긴 셈이 됐다.
매카시 의장은 지난 1월 15번의 투표 끝에 어렵사리 하원의장이 됐다. 이후 부채한도 인상, 셧다운 방지 등 국면에서 공화당 이익을 관철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취임 당시 당내 극우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내건 조건들에 발목을 잡혔다. 과거와 달리 당지도자가 아닌 일반 의원 개인도 해임결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동의했던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월8일 보도에서 매카시 의장이 우파 의원들에게 많은 것을 양보한 결과 의장직에서 축출되기 쉬워졌다고 평가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