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적 비판이 갈수록 사악해지고 저급해지면서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 독재 정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0일 보도했다.
지난 11일 재향군인의 날을 맞아 행한 연설에서 트럼프는 193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쇼 정권 지도자들이 정적들을 가리켜 썼던 “박멸해야 하는 해충(vermin)”이라는 구절을 썼다.
그는 “내부로부터의 위협이 외부로부터의 위협보다 훨씬 사악하고 위험하며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외국 독재자들을 찬양하고 민주주의 이념을 경멸해온 트럼프가 국내 세력을 겨냥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 독재자 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국내 정적에 갈수록 더 집중하는 트럼프의 모습이 전체주의 지도자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학자들, 민주당 지지자들, 트럼프 공화당 지지자들이 트럼프가 외국의 독재자들은 물론 과거의 권위주의 독재자들과 닮았음을 새삼 지적하고 있다. 최근 들어 트럼프의 좌파 공격 발언이 파시스트를 닮아가는 점이 그의 본심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의심도 하고 있다.
정적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규정해 대중 공격 유도
뉴욕대 파시즘 전문가 루스 벤-기트 교수는 “트럼프 발언이 파시스트 발언과 똑같다”면서 “사람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대중이 격렬하게 반응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와 측근들은 미국 민주주의와 법치 규범을 파괴하려는 계획을 입안하고 있다.
법무부를 동원해 정적들에 복수하고 대통령 권력을 극대화하는 한편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변호사들을 요직에 기용해 반대를 무릅쓰고 행동에 나서도록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같은 우려에 대해 기우이자 정치적 공격이라고 치부한다.
트럼프 선거 캠프 대변인 스티븐 정은 “해충”발언에 대한 비판에 대해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 처량한 존재가 박살나게 되는” 진보주의자들이 보이는 반응일 뿐이라고 반응했다.
권위주의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발언이 갈수록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닮아간다고 지적한다. 트럼프가 정확히 그들과 닮았다고 말할 수 없을 지라도 적어도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강조한다.
트럼프의 고립주의적 성향은 제국과 팽창을 추구한 히틀러나 무솔리니와는 다르다. 또 대통령 재임 시절 시위대를 막는데 군대를 동원하려다 강력한 반대로 실패했다.
공화당 상원의원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민주당 정부에서 국방장관이 된 척 헤이글은 “트럼프를 네오파시스트나 독재자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트럼프 대통령 4년 재임 동안 두드러진 신념을 볼 수 없었다”면서도 트럼프의 유세가 “크게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가 “미국의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트럼프 지지가 커져 의회와 정부를 점령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면서 “민주주의 타협이 사라지면 독재 정부만 남는다”고 경고했다.
2016년 농담 수준이던 발언이 증오 발언으로 악화
트럼프의 선거 운동은 갈수록 고삐 풀린 모양새다.
2016년 승리가 유력했던 트럼프의 유세 현장은 그의 조롱 발언에 청중들이 웃음으로 화답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중 갈수록 분노에 찬 발언을 쏟아내다가 급기야 지지자들이 의회를 공격하도록 촉발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조기 선거운동에 착수한 것은 자신에 대한 기소에 대한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의도도 일부 있다. 기소 때문에 트럼프는 미 공화당 168년 역사에서 1944년과 1948년 연거푸 낙선한 토마스 듀이에 이어 트럼프가 두 번째로 두 번 낙선하는 후보가 될 수 있다.
트럼프는 최상위 정치인들부터 하급 공무원까지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한다. 합참의장을 처형해야한다고 주장하고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백악관에 복귀하면 정적을 투옥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사법제도에 전면적으로 맞서면서 검사와 판사, 심지어 법원 서기까지 공격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기존 정치 세력과 “가짜 뉴스 언론”을 파괴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대체로 지지한다. 오르반과 시진핑 중국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칭송해도 개의치 않는다.
지난 7월 트럼프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가족에 대한 “응징”을 강조했다.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하자 지지자들이 환호했다. 워싱턴 민주당 정치인들을 “즉시 제거해야할 병든 온상”이라고 하자 함성을 질렀다.
트럼프의 재선 승리는 중도 유권자들과 온건 공화당 유권자들이 그를 지지할 지에 달려 있다. 지난 2020년 대선과 지난해 중간 선거에서 이들은 트럼프에 등을 돌렸다.
최근 트럼프 진영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도파 및 온건 공화당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더 많이 지지할 것으로 나타나자 한껏 고무돼 있다.
그러나 공화당 내에서도 여전히 트럼프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다. 2016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존 카시히 전 오하이오 주지사는 “트럼프가 분노 발언, 증오 발언을 전혀 자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의 품격, 미국의 품격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트럼프를 닮은 외국 지도자들이 득세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파시즘이 부활하고 있다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파시즘은 극단적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극우 독재 체제를 말한다. 최고 지도자의 자의적 통치. 폭력과 정적에 대한 복수, 법치의 무시 등이 특징이다.
파시스트 지도자들은 “우리가 희생을 치르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독재를 정당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속아서 피해를 당하기 때문에 (복수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미 유권자들 “법 무시해도 나라 바로 잡는 지도자” 지지
최근 여론 조사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기존 가치 규범을 무시하는 지도자들을 용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달 대중종교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38%가 “규칙을 위반하더라도 나라를 바로 잡는” 지도자를 지지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찬성율은 48%였다.
텍사스 A&M대 제니퍼 메르시에카 교수는 “대통령이 전투적 발언을 하는 것은 외국과 전쟁을 일으키려는 경우”지만 “트럼프는 국내 정적을 향한 전쟁 발언을 일삼는다”면서 그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