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부과를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릴 것에 대비해 미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관세 환급 소송과 이의 신청에 나서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지난달 연방대법원의 구두 변론에서 대법관들은 트럼프의 임의 관세 부과 권한에 회의적 입장을 보였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관세를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져 왔다.
코스트코 등은 이미 환급 소송 제기
이에 따라 최근 몇 주 사이 코스트코(박스형 유통체인)와 범블비 푸즈(참치 통조림 회사) 등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법무법인을 고용해 소송을 제기하거나 미 정부에 공식 청구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코스트코가 무역법원에 트럼프의 관세를 무효화하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전액 환급받을 권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장해 달라”는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코스트코의 소송은 관세의 재정적 부담이 백악관이 주장해온 것처럼 외국인이 아닌 미국 수입업자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골드만 삭스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기업들은 관세 부담의 절반 가량을 떠안았고, 3분의 1 이상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했다.
최근에는 화장품회사 레블론,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 발레오 노스 아메리카, 차량용 배터리 제조사 인터스테이트 배터리즈, 오토바이 제조사 가와사키, 그리고 범블비 푸즈 등이 비슷한 소송을 제기했다.
이 기업들은 모두 코스트코와 함께 크로웰 앤 모링이라는 법무법인의 대리를 받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세관 상대로 이의 신청
중소기업들은 세관국경보호국(CBP)에 공식적으로 항소를 제기했다.
또 미래 관세 환급 권리를 투자 회사들에 팔려는 기업들도 있다. 환급될 관세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우선 지급받는 방식이다.
기업들이 이처럼 경쟁적으로 관세 환급 청구에 나서는 상황은 이들이 재정적 압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은 가격을 올리고 판매 전망을 줄이며 고용을 늦추거나 생산을 지연시키는 등 트럼프 관세 정책에 대응해 공급망 전체를 재조정해야 했다.
이처럼 경제적 압박이 커지고 있음에도 트럼프는 관세를 성공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지난 2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트럼프는 관세로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관세가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정부 환급 지연 가능성 높아
연방 대법원이 실제로 관세를 무효화할 것인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일부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관세 무효화 판결이 혼란을 초래할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을 대리해 관세 무효화 판결을 청구한 닐 커틀 변호사는 “(관세 무효화가) 어렵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면서 대법원이 환급을 지연시키거나 한도를 설정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대법원은 또 직접 환급 결정을 내리는 대신 하급 법원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다.
다만 결국 미국 수입업체들이 환급을 받아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지면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환급 청구에 나설 전망이다.
리처드 모지카 무역 전문 변호사는 환급 권리를 보전하는 방법을 문의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밝혔다.
또 세관에 부과된 관세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정부가 관세 부담을 확정하는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청원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와 관련 세관이 기업들의 청원을 기각한 경우 대법원이 관세 무효화 판결을 내리더라도 환급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세관에 청원하는 대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등 보다 적극적인 법적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
1998년 대법원이 수출세를 무효화했을 때, 정부는 세금을 납부한 기업들에게 이자를 포함해 환급하는 제도를 만들고, 국제무역법원이 그 과정을 감독하게 함으로써 환급을 쉽게 만든 전례가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관세 환급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트럼프는 지난 2일 관세 수익을 정부 부채를 상환하고 미국인들에게 돈을 나눠주는데 사용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정부가 환급에 소극적일 경우 중소기업들은 환급 소송 비용을 부담하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직접 환급을 청구하는 대신 미래 환급 권리를 아주 낮은 가격에 파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관련 미 케이토연구소 스콧 린시컴 부회장은 월가가 트럼프 정부가 대법원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말 투자은행 오퍼하이머는 ‘상호관세’ 환급 권리가 액면가 대비 20~30%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펜타닐 관련 관세 환급 권리는 10%대 후반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투자자들에게 알렸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이끌었던 투자회사 캔터 피츠제럴드 등도 유사한 거래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유 수유 어머니용 가방과 액세서리를 제조하는 기업의 대표 사라 웰스는 지난 6월 관세 환급 권리를 예상 환급액의 20%에 팔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웰스는 관세 환급 권리를 매각하지 않고 세관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대법원이 대통령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보지만 “환급 절차가 1년 이상 걸리면 버틸 여력이 없는 기업들이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