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과 1년 전 대선 국면에서 최대 강점으로 내세웠던 경제와 이민, 범죄 대응 분야에서 여론의 신뢰를 빠르게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신 AP통신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의 핵심 국정 어젠다 전반에서 지지도가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며 정치적 균열이 가시화되고 있다.
AP통신과 NORC가 4일부터 8일까지 미국 성인 1,1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경제 문제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31%에 그쳤다. 이는 지난 3월 조사 당시 40%에서 9%포인트나 하락한 수치로, 트럼프의 1기와 2기 집권 기간을 통틀어 경제 분야에서 가장 낮은 인정 지지도다.
경제는 트럼프가 줄곧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로 삼아온 핵심 영역이다. 감세, 규제 완화, 고용 확대를 앞세워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구축해왔지만, 유권자 인식은 더 이상 이를 따라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
범죄 대응 분야에서도 하락세는 분명하다.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53%의 지지를 받았던 범죄 대응 평가는 이번 조사에서 43%로 떨어졌다. 강경 치안과 법질서 회복을 강조해온 메시지가 유권자들에게 이전만큼 설득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민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 중 하나로 평가되던 이민 대응 지지도는 38%로 집계됐다. 3월 조사 당시 49%였던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11%포인트가 빠진 셈이다. 국경 통제와 불법 이민 단속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실제 성과와 혼란스러운 정책 집행이 평가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만 대통령직 수행 전반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덜 급격한 하락을 보였다.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36%로, 3월의 42%에서 6%포인트 감소했다. 경제·이민 등 핵심 정책 분야에 비해 낙폭은 작지만, 전반적인 국정 신뢰 역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주목할 대목은 공화당 지지층 내부에서도 균열 조짐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경제 분야에서 트럼프를 긍정 평가한 친공화당 응답자는 69%로, 3월의 78%에서 눈에 띄게 줄었다. 절대적 지지 기반으로 여겨졌던 공화당 지지층 내에서도 피로감과 의문이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4%포인트다. 수치 변동의 상당 부분이 통계적 오차 범위를 넘어선 만큼, 일시적 흔들림이 아닌 구조적 하락 국면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
경제와 이민이라는 ‘대선 무기’가 동시에 무뎌지면서,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는 과거보다 훨씬 불안정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강점의 붕괴는 곧 정체성의 흔들림을 의미한다. 트럼프 정치의 중심축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워싱턴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로 쏠리고 있다.
<김상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