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부부가 셀러브리티 잡지인 보그의 표지모델로 등장한 것을 두고 찬반 양론이 거세다. 이에 대해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8일(현지시간) 부부의 보그 출연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의사를 철회하는 이유로 삼는 것처럼 바보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칼럼을 실었다.
인터넷이 늘 그렇듯 보그 건을 두고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회자된다. 러시아군이 잔인하게 우크라이나를 공격해 국민들을 살해하는 와중에 부부가 시간을 내 촬영한 것을 두고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탱크가 들이닥칠 때 도주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진지하지 않다는 주장에는 친러 요원들의 의견이 작용하고 있다.
벤 스틸러 감독과 함께 사진을 찍은 젤렌스키를 진지한 사람으로 볼 수 있나? 그래미상 수상을 노리는 그가 나라를 제대로 이끌고 있는 거냐? 각국 지도자들은 자국내 고물가와 에너지 위기 같은 문제를 제쳐두고 왜 젤렌스키와 사진을 찍느냐? 등등이다.
전세계 위기가 한창인 때 각국 지도자들이 셀러브리티를 만나선 안된다는 주장이 완전히 정신나간 것이라는 점은 논외로 하자. 그런 주장은 윈스턴 처칠이나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유령이나 할 법한 주장이다. 진실은 다음과 같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방 셀레브리티를 만나고 셀레브리티 잡지에 출연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미국 대중의 최우선 관심사로 붙잡아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셀러브리티나 인플루언서, 유명 모델과 함께 등장하는 스토리가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관심사가 매우 협소하다. 솔직히 우크라이나 뉴스가 김이 빠진 게 사실이다. 일촉즉발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됐다. 좀 쉴 필요가 있다. 러시아가 또 다른 잔혹행위를 하더라도 우리가 신경이나 쓸 것 같으냐? 모든 게 흘러가는 일일 뿐이다. 넷플릭스 드라마가 또 나왔네. 그만 좀 떠들어라.
그런 생각은 차갑고 이기적이다. 서방의 지원이 없으면 우크라이나는 무너진다. 우크라이나 영토가 러시아 독재자 뜻대로 분할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소련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강제로 굶겨 죽인 홀로도모르 이래 경험하지 못한 공포에 시달릴 것이다.
젤렌스키가 진지하지 않다는 비난은 미국인의 생각을 보여준다. 진지하지 않다는 비난은 우리가 받아야 한다. 진지하지 않은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려는 젤렌스키의 행동 때문에 그가 진지하지 않은 게 아니라 현대 전쟁에서 여론의 힘을 잘 알다는 뜻이다.
러시아 곰이 성가셔선 안된다며 우크라이나 독립을 싫어해 갈갈이 찢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러시아 꼭두각시처럼 불쾌한 건 없다. 진작에 나왔을 더러운 주장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애니 레이보비츠(젤렌스키 부부 사진 작가)의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정도로 신념이 약하다면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오히려 중요하지 않다. 그 순간 서방은 패배한 것이다.
나라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간절히 도움을 구하는 정치인을 미쳤다고 하기보다 우크라이나 도시들을 초토화하고 주민들을 러시아 촌구석에 이주시키는 나라를 비난할 일이다. 이 전쟁에서 악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