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요르단강 서부지역 취재중 총격을 받아 숨진 알자지라 여기자 시린 아부 아클레(51)를 공격한 것이 이스라엘군이었음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발견됐다고 CNN이 24일 보도했다.
화창한 봄날 아침 요르단강 서안에서 몇차례 총성이 울렸다. 현장을 취재하는 카메라멘이 콘크리트벽 뒤로 몸을 숨긴 직후 아랍어로 “부상했다. 시린, 시린, 맙소사 시린, 앰뷸런스!”라고 외쳤다.
카메라 화면이 돌면서 알자지라 기자 시린 아부 아클레가 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포착됐다. 엎드린 모습이었으며 옆에는 팔레스타인 기자 사타 하나샤가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웅크리고 있다. 하나샤는 총격이 계속되는데도 손을 뻗어 아부 아클레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두 여기자 모두 “언론(Press)”이라고 적힌 헬멧과 방탄복을 입고 있었다.
잠시 뒤 하얀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아부 아클레를 옮기려고 시도했지만 계속되는 총격에 불가능했다. 몇 분이 지난 뒤에야 거리에서 아부 아클레를 끌어낼 수 있었다.
알자지라 카메라맨 마즈디 바누라가 촬영한 이 동영상은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인 여기자 아부 아클레가 지난 11일 오전 6시30분쯤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지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는 다른 기자들과 함께 제닌 난민 캠프 입구에 서 있었다. 이스라엘의 공격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동영상에는 아부 클레가 직접 총격당하는 장면이 담기지는 않았지만 현장 목격자가 이스라엘군이 일부러 기자들을 겨냥해 공격했다고 증언했다. 기자들 모두 취재중임을 알리는 파란색 방탄복을 입고 있었다.
하나샤는 “우리를 볼 수 있도록 이스라엘 군 차량 앞에 5분에서 10분 동안 서 있다가 움직였다. 기자들이 늘 하는 방식이다. 단체로 그들 앞으로 가 우리가 기자임을 알게 한 뒤 이동했다”고 말했다. 아부 아클레가 총격을 당했을 때 하나샤는 충격을 받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다고 했다. 아부 아클레가 쓰러질 때 걸려 넘어졌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려다보니 숨을 쉬지 않았고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고 했다.
총격이 발생한 날 이스라엘군 대변인 란 코카브는 군라디오를 통해 아부 아클레가 “무장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 촬영중이었다. 카메라로 무장한 셈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누가 총격을 가했는지 불분명하다고 말한다. 그가 팔레스타인의 무차별 사격에 맞았거나 200m 떨어진 곳에서 이들과 총격전을 벌이던 이스라엘군 저격수의 총을 맞았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부 아클레가 무장 팔레스타인 근처에 있었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지난 19일 아부 아클레 사망 사건에 대한 범죄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23일에는 이스라엘군 최고 변호사 이파트 토메르-예루샬미 중장은 범죄에 의한 공격이라는 명백한 의심이 제기되지 않는 한 “전투 현장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반드시 범죄수사를 하지 않는 것이 군의 정책이라고 한 연설에서 밝혔다. 그러나 미국 의원들과 유엔 및 국제사회가 독립적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CNN이 확보한 동영상에는 현장에서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으며 무장 팔레스타인도 없었다. 동영상 내용을 뒷받침하는 8명의 증언도 있으며 음성 분석 전문가와 폭발물 전문가들도 아부 아클레가 이스라엘군의 표적 총격으로 숨졌음을 보여준다고 밝히고 있다.
동영상은 제닌 난민 캠프 주변에서 아부 아클레가 총격을 당하지 전 주변이 조용했음을 보여준다. 하나샤와 다른 기자들 및 현지 주민들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출근하거나 학교로 가고 있었으며 도로는 비교적 조용했다고 증언했다.
아랍인들에게 유명한 기자가 취재하러 온 것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운동복과 슬리퍼 차림의 남자 10여명이 아부 아클레 일행을 구경하고 있었다. 수다를 떨며 서성거리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난민 캠프 거주자 살림 아와드(27)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16분짜리 동영상을 CNN에 제공했다. 기자들이 모인 곳을 확대하다가 멀리 서 있는 이스라엘 장갑차를 비추면서 “저격수가 있다”고 했다. 한 청소년이 기웃거리자 소리쳤다. “나돌아다니지 마라. 장난인줄 아니? 죽고 싶냐?”고 소리쳤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공격으로 이스라엘 사람과 외국인이 숨진 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초부터 빈번히 제닌 난민 캠프를 공격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캠프 거주자 중에 용의자가 있다고 한다. 난민들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지난 20일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17살 소년이 숨지고 18살 소년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동영상을 전달한 아와드는 당시 무장한 팔레스타인 사람이나 충돌이 없었으며 기자들이 있어 총격이 있을 것으로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다. “주변에 기자들이 있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와드가 촬영한 동영상에는 아부 아클레, 하나샤, 다른 팔레스타인 기자 무자히드 알-사디, 알자지라 프로듀서 알리 알-사무디 등 4명이 이스라엘 차량을 향해 다가가는 중 총격을 당한 것으로 나타난다. 총격이 시작되자 아부 아클레가 피신하는 모습도 있다. 정면에 이스라엘 군 차량이 보인다.
아와드는 “소총이 달린 네다섯대의 이스라엘 장갑차가 있었고 그들중 하나가 시렌을 쐈다. 현장에서 직접 봤다. 시렌에게 다가가려 하자 우리에게도 총을 솼다. 도로 건너로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알이 아부 아클레의 헬멧과 방탄복 사이의 귀 근처에 맞았다고 했다.
이스라엘 군당국은 교전이 벌어지던 중 이스라엘 장갑차량에 나 있는 총구에서 망원경이 달린 저격총으로 이스라엘군이 총격을 가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목격자들은 총격전이 벌어지기 전에 저격수가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봤다고 했다.
아부 아클레의 시신을 도로에서 끌어낸 제닌 아랍아메리칸대학교 자말 후웨일 교수는 “이스라엘군이 기자를 직접 쐈다”고 말했다.
당시 새벽 제닌 캠프를 공격한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민병대 사이에 M16 소총 등을 사용한 총격전이 벌어졌었다고 폭발물 전문가 크리스 콥-스미스가 밝혔다. 교전에 사용된 총알이 5.56mm 구경이었음을 의미한다. 아부 아클레를 저격한 총알은 팔레스타인측이 가지고 있고 발사한 총은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기에 양측의 합동조사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측은 범죄조사를 시작할 것인지를 검토하고 있으나 팔레스타인측은 이스라엘의 조사에 협조할 의사가 없다.
한 이스라엘 고위 안보당국자는 지난 18일 이스라엘군이 고의로 아부 아클레를 살해했다는 것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특히 기자를 공격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이스라엘군은 M16 소총을 연속발사하지 않는다. 한발씩만 쏜다”면서 팔레스타인 민병대가 “부주의하게 무차별” 사격을 했다고 밝혔다.
아부 아클레를 살해한 총알을 입수하지 못하더라도 총격의 유형과 총성, 현장에 남아 있는 탄흔 등을 분석해 누가 아부 아클레를 살해했는지를 밝혀낼 수 있다.
영국 군을 예편한 안보 전문가 콥 스미스는 아부 아클레가 무차별 사격이 아닌 별도의 사격으로 숨졌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장 동영상을 살펴본 그는 “시렌이 서 있던 나무에 나 있는 탄흔이 모여 있는 점이 총격이 무차별 사격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를 겨냥해 사격했다”고 말했다.
한편 동영상에서 들리는 총성을 분석한 총기 전문가 몬타나대 로버트 마허 교수는 아부 아클레에 맞은 총성과 다른 총성들이 소리가 다르다면서 그를 저격한 총알이 약 177m~197m 떨어진 곳에서 발사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스라엘군 저격수가 있던 거리와 일치한다. 그도 나무에 탄흔이 집중돼 있는 건 아부 아클레가 무차별 사격에 맞은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