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두창이 아프리카 밖의 지역에서 발생한지 한 달 만에 환자가 900명에 근접했다. 아직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30개 가까운 국가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 불안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원숭이두창이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킬 위험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병인 만큼 경계심을 늦춰선 안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4일 국제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ourworldindata)에 따르면 원숭이두창 확진자는 지난 3일 기준으로 28개국에서 898명이 발생했다. 지난달 6일 영국에서 첫 확진자가 보고된 뒤 4주 만에 확진자 규모가 900명 가까이 확대된 것이다.
영국에서는 지금까지 227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스페인(189명), 포르투갈(143명), 독일(66명), 캐나다(61명), 프랑스(51명), 네덜란드(40명), 미국(26명) 등 다른 유럽과 북미 지역 국가에서도 환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8명), 호주(5명), 아르헨티나(2명), 멕시코(1명) 등 아시아와 중남미, 오세아니아 지역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원숭이두창의 인간 감염 사례는 1970년 처음 보고됐고 아프리카 지역에서 풍토병이 됐다. 하지만 아프리카 밖의 다른 지역에서 이렇게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원숭이두창의 전파력이 코로나19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 팬데믹을 일으킬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에어로졸을 통한 공기 중 감염이 가능한 코로나19와 달리 원숭이두창은 주로 환자의 병변이나 체액을 직접 접촉하는 방식으로 감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30개 가까운 나라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만큼 확산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원숭이두창은 치명률이 1~10% 정도로 코로나19에 비해 높고, 주로 아프리카에서만 발생하던 감염병이라 감염 경로나 증상, 치료법 등에 대한 연구 결과가 부족하다.
전문가들이 꼽는 불안 요인 중 하나는 원숭이두창의 긴 잠복기다. 원숭이두창의 잠복기는 보통 7∼14일이지만 길게는 21일까지 지속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숭이두창이 불과 한 달 만에 약 30개국으로 확산된 것은 환자가 별다른 증상 없이 다른 지역을 방문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상황 안정화로 각국이 방역 조치를 완화하고 있어 원숭이두창이 빠르게 확산할 수 있는 위험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올 여름에는 해외 여행이 늘어나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많이 열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원숭이두창 확산의 진원지가 최근 스페인과 벨기에에서 열린 남성 성소수자들의 대규모 파티라는 추정도 있다.
원숭이두창이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도 감염될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원숭이두창은 1958년 두창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실험실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됐다. 다람쥐와 쥐 등 설치류도 감염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원숭이두창이 환자가 키우는 반려동물에게 전파된 뒤 다시 야생동물에게 바이러스가 옮겨가면 풍토병화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현재 해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햄스터나 기니피그와 같은 설치류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가구가 적지 않다. 또 개나 고양이의 감염 사례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지만 감염되지 않는다는 확신도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영국 보건안전청(UKHSA)은 원숭이두창 환자가 21일동안 반려동물과 접촉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놓기도 했다.
원숭이두창에 대한 면역을 보유하고 있는 인구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는 점도 불안 요인 중 하나다.
원숭이두창은 두창과 함께 폭스바이러스과(Poxviridae Family) 올소폭스바이러스속(Orthopoxvirus Genus)에 속해 있다. 이 때문에 기존 두창 백신이 85% 정도의 예방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WHO가 1980년 두창 종식을 선언한 이후 백신 접종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이후 세대의 경우 원숭이두창 면역을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최근 북미와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확진자도 대부분 20대와 30대 남성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두창 백신 접종은 1978년까지 시행이 됐다. 57세 이상은 두창 백신을 대부분 맞았지만 44세 이하는 한번도 접종을 안 받은 것”이라며 “50세 이하는 원숭이두창에 대한 면역이 없어서 (바이러스에) 노출이 된다면 상당히 감염 위험이 높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WHO는 원숭이두창의 팬데믹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중증 위험이 높은 집단으로 번질 경우 공중보건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WHO는 “위험에 처한 집단에서 더 이상의 확산을 통제하고, 일반 인구로의 전파를 방지하고, 풍토병이 아니었던 지역에서 원숭이두창이 임상적인 질환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들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직 국내에서 원숭이두창 확진자가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방역 당국은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오는 8일 원숭이두창을 코로나19와 같은 2급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하는 고시를 발령할 예정이다. 고시가 개정되면 원숭이두창 확진자는 재택치료가 아닌 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게 된다. 정부는 또 감염 노출이 높은 대상을 정해 백신 접종을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