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이 세베로도네츠크 완전 점령을 위한 총공세에 나서면서 우크라이나 군이 전략적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피해를 감수하면서 끝까지 사수할지, 후퇴를 통해 추후 반격을 모색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04일째인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철수해 더 나은 방어적 조건을 지킬지, (퇴각을 위한) 다리가 폭파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남아있을지 전략적 결정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그것은(딜레마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해야했던 선택들과 다르지 않다”며 “단기적으로 죽음과 파괴를 피하기 위해 길을 내주는 방안, 추후의 결실을 바라는 마음으로 오랜 역경을 견뎌내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군은 객관적 열세 속에서 세베로도네츠크에서 끝까지 항전하거나, 리시찬스크로 물러나 방어진지를 구축한 다음 추후 반격을 모색하는 것 말고는 현재로선 선택지가 없다.
이와 관련,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방부 내부 회의에서 “전체적으로 루한스크인민공화국 영토의 97%가 해방됐다”고 주장했다.
또 쇼이구 장관은 “러시아 군은 동부 핵심도시 세베로도네츠크의 주거 지역을 점령하고 (세베로도네츠크) 외곽의 공업 지대를 장악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군이 세베로도네츠크를 장악하게 되면 동부 루한스크 주(州) 전체를 점령하게 된다. 루한스크의 97%를 장악했다는 쇼이구 장관의 주장은 세베로도네츠크 시가전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크렘린은 이미 오는 10일을 세베로도네츠크 완전 점령 시한으로 제시한 바 있다.
세르이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지난 5일 “러시아 군은 6월10일까지 세베로도네츠크를 완전히 점령하고 리스찬시크-바흐무트 도로를 차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러시아 군의 세베로도네츠크 외곽 도시 일부 점령은 인정면서도 도심 중심부까지 완전 장악한 상태가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하이다이 주지사는 “러시아 군이 세베로도네츠크 외곽 산업 단지 일부를 점령했다”면서 “(현재) 치열한 시가전이 계속되고 있고,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아군은 러시아 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렉산드르 슈투푼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 대변인도 “러시아가 공세를 가하는 세베로도네츠크에서도 전투가 계속되고 있고, 적군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세베로도네츠크 남서쪽 시베르스키도네츠 강 건너편 리시찬스크를 향한 러시아 군의 공습도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군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 군은 리시찬스크 광산에 포격을 가해 2명이 부상당했다. 우크라이나 군의 이동을 염두에 둔 선제적 타격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이뤄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군의 치열한 전투 흔적이 담긴 위성사진도 새로 공개됐다. CNN 등 외신은 미국 민간 위성 영상 업체 막사 테크놀로지가 촬영한 동부 지역 새 위성사진을 보도했다.
사진 속에는 세베로도네츠크와 루비즈네, 돈베케 등 동부 전선에서 양측이 포격으로 주고받은 흔적들이 담겼다. 특히 세베로도네츠크 북서부에 위치한 루비즈네 여러 건물들이 파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CNN은 “위성사진들은 발사된 러시아 로켓의 주된 목표가 세베로도네츠크 인근 도시를 향해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는 별개로 러시아 군은 북동부 전선 전략적 요충지 하르키우와 남부 전선 요충지 미콜라이우 지역에서도 각각 공습을 감행했다.
이호르 테레호우 하르키우 시장은 러시아 공습으로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CNN에 따르면 비탈리 김 미콜라이우 주지사는 24시간 동안 미콜라이우 남부 지역에 이뤄진 러시아 군의 포격으로 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러시아의 공습으로 인해 행정건물, 외래진료 시설, 운동장, 구의회 건물 등 미콜리아우 지역 내 3700여 채 건물들이 파손 당했다고 부연했다.
장기 고립을 거쳐 현재는 러시아가 점령 중인 마리우폴에서는 전염병 확산 우려가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매장이 안 된 시신과 오염된 식수로 콜레라가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 최후 항전지였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는 시신 인계가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국(Main Intelligence Directorate) 관계자는 마리우폴 아조우스탈에서 숨진 210명의 시신을 인계 받았음을 밝혔다고 CNN은 보도했다.
현재 시신들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옮겨져 신원 확인을 위한 DNA 대조 검사가 진행 중이다.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름반도에서는 육로 개설 소식이 들렸다. 러시아 국방부가 이날 민간인과 물자가 이동할 수 있도록 육로 통로를 열었다고 밝혔다. 크름반도 육로 확보는 이번 침공의 주요 목적으로 평가돼 왔다.
구체적으로 쇼이구 국방장관이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자국과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크름반도 간 통행이 가능하도록 러시아 철도국과 군 당국이 1200㎞에 달하는 철도를 복구하고 도로를 개통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크름반도 동쪽 끝의 케르치 대교를 통하면 러시아 본토인 크라스노다르 시와 바로 연결된다.
민간인 피해는 여전히 꾸준히 늘고 있다. 길어진 전쟁으로 인해 사상자 수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것도 우크라이나 정부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러시아 침공 후 현재까지 총 4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 추산 규모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개전 이후 전날인 6일 자정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사망자 4253명, 부상자 5141명 등 총 9394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아울러 유엔난민기구(UNHCR) 집계에 따르면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를 빠져나간 사람은 698만3000명을 넘었다. 이들 중 369만 명 이상이 폴란드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유입은 104만1000여 명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