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8일 크름대교(케르치해협 대교) 폭발 사건을 “우크라이나 비밀 요원이 자행한 테러 공격”이라고 규정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밤 크렘린궁 텔레그램 채널에 공개된 영상에서 크름대교 폭발에 대해 직접 입을 열고 우크라이나를 비난했다.
그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민간 기반 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테러 행위”라며 “우크라이나 특수부대가 고안하고 실행하고 명령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사건 조사를 위해 구성한 조사위원회 책임자인 알렉산드르 바스트리킨을 만난 뒤 이 같이 말했다.
바스트리킨 위원장은 “테러행위에 대해 형사 사건을 개시했다”면서 “우리는 이미 트럭 경로를 설정했다. 이 경로엔 불가리아, 조지아, 아르메니아, 북오세티야,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 등을 통과하는 경로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의 지원으로 트럭 운전사의 신원도 확인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오는 10일 국가안보회의를 개최한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10일 안보회의를 열고 전략 회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자리에서 크름대교 상황이 논의될 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회의 결과에 대해 (추후) 알릴 것”이라고 했다.
타스통신은 푸틴 대통령은 정기적으로 안보회의를 개최하고 있으며 원칙적으론 매주 열린다고 전했다.
크름대교는 지난 8일 오전 교량을 지나던 트럭이 폭발, 철도용 교량까지 불길이 번져 연료를 싣고 지나던 화물열차에까지 불길이 옮겨 붙었다. 이로 인해 3명이 사망했고 다리 일부가 무너졌다. 또 차량 및 열차 통행이 일시 중단됐다 일부가 재개됐다.
러시아는 마라트 후스눌린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부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크름대교는 러시아 본토와 크름반도를 잇는 다리다. 러시아 흑해 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세바스토폴 항구의 주요 동맥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러시아군의 주요 보급로가 돼 왔다.
더 나아가 러시아의 실질적인 크름반도 지배의 상징이어서 이번 공격은 푸틴 대통령에게 굴욕을 안겨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선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면서 푸틴 대통령의 핵 무기 사용까지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와 관련 CNN은 “푸틴 대통령은 케르치 대교 폭파 사건을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악랄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며 “물리적 손상은 복구할 수 있지만 푸틴 대통령의 이미지 손상은 복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이클 멀린 전 미 합참의장은 푸틴 대통령을 “궁지에 몰린 동물”로 비유하며 “그는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특히 크름대교 폭발은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매우 상징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러시아는 이 폭발 직후 8일 밤부터 9일 새벽 사이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주 민간인 거주지에 S-300 16발과 Kh-22 순항미사일 6발을 보복 공격해 현재까지 13명이 숨지고 어린이 11명을 포함해 89명이 부상했다.
우크라이나는 책임을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크름, 다리, 시작”이라며 “불법적인 것은 모두 파괴해야 하고, 훔친 것은 모두 우크라이나로 반환해야 하며, 러시아에 속한 모든 것은 추방돼야 한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