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와 남부 러시아군 점령지 탈환을 위한 대반격전에 나선 우크라이나 정부가 수도 키이우에서는 강력한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1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다음은 기사 요약.
지난달 반부패 수사관들이 브세볼로드 크냐제우 대법원장을 체포했다. 수사 당국이 공개한 사진에는 대법관 자택 금고에서 나온 100달러 뭉치 270만 달러(약 35억 원)가 찍혀 있었다.
우크라 대법원장 수뢰혐의로 체포
수사관들은 크냐제우 대법원장이 “불법 혜택에 대한 2차 수뢰금”이 45만 달러(약 5억8000만원)이었다고 밝혔다. 이 수뢰사건에 대법원장 외에도 대법원의 다른 판사들과 기타 판사들이 연류돼 있을 것으로 설명했다. 수사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키이우의 반부패행동센터 소속 변호사 테티아나 셰브축은 “지방 판사가 아닌 최고 법원 판사가 수뢰한 큰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무기 지원은 물론 막대한 경제 지원도 받고 있다. 지원국들은 지원한 자금이 유용되지 않도록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우크라이나 민주화를 저해해온 부패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는 것도 부분적으로 부패 청산의 성과에 달려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치적 미래도 부패 청산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전쟁 때문에 물질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아온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만연한 부패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대법원장 체포가 부패청산 전환점 될 것” 강조
잴렌스키 대통령은 이달초 기자회견에서 대법원장 체포로 “희망”이 생겼으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지원국들이 이번 주 런던에서 1조 달러로 추산되는 우크라이나 재건 지원 방안을 논의한다. 그러나 서방의 지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는 평가를 받으면 지원이 무산될 수 있다. 부패 청산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주말 사법 개혁을 논의하는 국가 안보 및 국방위원회를 소집했다.
크냐제우 대법원장 체포는 8년 전 우크라이나반부패국(NABU)과 반부패특검(SAPO)가 설치된 이래 가장 큰 사건이다. 두 기관은 우크라이나에 만연한 뇌물수수와 뒷거래를 발본하기 위한 독립 기관들이다.
두 기관들은 대법원 내부의 부패가 어디까지 미쳤는지도 폭로할 예정이다. 크냐제우 대법원장과 다른 부패 대법관들이 뇌물을 받은 사건이 어떤 것들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대법원에 소속된 판사는 168명이며 합의체 재판부는 최대 18명의 판사로 구성된다.
서방 우크라 부패청산 크게 신뢰 안해
우크라이나의 부패 청산 작업에 대해 서방은 크게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키이우 주재 한 유럽 외교관은 “우린 다른 사건들은 없냐고 묻고 있다. 사법 개혁이 크냐제우 처벌로 그쳐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이 자체적으로 정화할 수 있으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크냐제우의 동료 법관들은 그가 체포된 날 대법원 “암흑의 날”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NABU 당국자들은 이번 사건이 보다 큰 수뢰 사건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한다. 크냐제우가 자신과 다른 판사들에게 뇌물을 전달하는 방법을 알리는 문자와 뇌물을 13번에 나눠서 주도록 요구하는 내용의 문자를 도청했다고 공개했다. 현지 언론은 NABU가 3명의 다른 판사 거주지를 수색했다고 보도했다.
당국자들은 지난달 크냐제우의 자택과 사무실을 수색했을 때 100만 달러(약 12억8000만 원)을 찾아냈고 며칠 뒤 다른 장소에서 추가로 50만 달러(약 6억4000만 원)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크냐제우는 친구가 전쟁 발발 전 보관해달라고 맡긴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국자들은 이 돈이 프랑스 거주 우크라이나 억만장자 기업인 코스티아니틴 제바호의 주식 소유권 판결에서 승소 판결을 내리는 대가로 받은 돈이라고 밝혔다. 다른 횡령사건으로 우크라이나 송환 재판을 벌이고 있는 제바호는 아직 뇌물 사건으로 기소되지 않은 상태다.
2월에도 대통령 측근 인사 등 공직자 다수 해임
젤렌스키 정부 관계자들은 부패 청산 작업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밝힌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에 대한 여러 건의 압수 수색과 수사, 해고, 해임 발표가 있었다. 젤렌스키의 부비서실장과 국방 차관도 포함됐었다. 군 식량을 비싸게 매입하고 뒷돈을 받은 사건이었다.
일부에선 공직자 재산공개법이 아직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것을 지적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부패 청산 노력이 미진하다고 비판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021년 연설에서 억만장자와 백만장자들에 독점을 지속하고 정치에 개입할 것인지 아니면 “합법적이고 투명하게 일할 것인지”를 묻는다고 밝혔다.
“반부호법”이 제정되면서 일부 억만장자들이 언론 지분을 매각해야 했고 전쟁 때문에 부와 영향력이 위축됐지만 대부분의 재벌들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지난달 우크라이나보안국이 가스사업자인 억만장자 드미트로 피르타슈를 8년에 걸쳐 국가 재산 8억 달러(약 1조 원)를 횡령한 혐의로 수사한다고 밝혔다. 그는 비엔나에 거주하면서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있는 미국으로 송환을 막는 재판을 벌이고 있다.
부패 청산을 주도하는 NABU와 SAPO의 책임자들은 대체로 호평을 받고 있으나 두 기구는 몇몇 전직 당국자들에 대한 기소에서 권한 남용으로 예산에 손해를 끼친 혐의만 적용했을 뿐 뇌물이나 치부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는다.
대표적인 사건이 전 인프라스트럭처장관 안드리 피보바르스키가 권한 남용으로 국가에 4000만 달러(약 514억 원)의 손해를 입힌 사건이다.
피보바르스키는 자신이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에 따라 항구 유지 자금을 마련했을 뿐이라며 모두 내각과 전임 장관의 승인을 받은 사안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