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이 전례 없는 정치·사회적 대혼란에 빠진 가운데 임시 총리로 수실라 카르키(73) 전 대법원장이 임명됐다.
12일 AP통신에 따르면 람 찬드라 파우델 네팔 대통령은 이날 카르키 전 대법원장을 임시 총리로 임명했다. 이번 인사는 샤르마 올리 총리가 시위대의 거센 압력과 정치적 붕괴 속에 사임한 데 따른 것이다.
카르키 전 대법원장은 네팔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대법원장 출신으로, 이번 임명으로 네팔 역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하게 됐다. 그는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대법원장을 지내며 정부 부패 척결에 앞장서 국민들의 신망을 얻은 바 있다.
젠지(Gen Z) 세대가 주도한 이번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최소 51명이 사망하고 1,368명이 부상했으며, 전국 교도소 20여 곳에서 약 1만5천 명이 집단 탈주하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 네팔 사태의 발단은 지난 5일 정부가 페이스북, 유튜브, 엑스(X·옛 트위터) 등 26개 소셜미디어 사용을 전면 금지한 데 있었다. 정치 지도자 자녀들의 호화 생활을 고발하는 ‘#NepoKids(금수저 자녀)’ 운동이 온라인에서 급속히 확산되던 시점에 정부가 SNS를 막자, 젊은 세대는 이를 표현의 자유 억압으로 받아들이고 거리로 나섰다.
SNS 차단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은 VPN과 블루투스 메신저 등을 활용해 시위를 조직했고, 저항은 곧 전국으로 퍼졌다. 시위대는 국회와 대법원, 검찰청 등 주요 국가 기관 건물에 불을 지르며 강하게 맞섰고,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경찰관 3명이 사망했고 시위 참가자 21명이 목숨을 잃었다. 혼란을 틈타 교도소 수감자들이 대거 탈주하면서 보안군과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인명 피해가 더 늘어났다.
정치권은 직격탄을 맞았다. 국회가 습격당하고 장관들이 거리에서 시위대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차량이 불태워지는 장면이 연이어 보도됐다.
샤르마 올리 총리는 관저가 포위되자 헬기를 타고 탈출해야 했고,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람 찬드라 파우델 대통령은 뒤이어 수실라 카르키 전 대법원장을 임시 총리로 임명했다. 이번 인사로 네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카르키는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대법원장을 지낸 바 있으며, 네팔 유일의 여성 대법원장이었다.

이번 사태의 핵심에는 ‘네포티즘’, 즉 정치권과 고위층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연고주의가 있다. ‘네포키즈’라는 표현은 권력층 자녀들의 특권적 삶을 비판하는 구호로 확산됐고, 경제적 기회가 부족한 젊은 세대의 분노를 상징했다. 네팔은 오랜 기간 정당과 관료, 공기업 인사에서 친인척·측근 위주의 임명이 반복돼 왔으며, 청년층은 이를 기회의 박탈로 체감해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권력층 자녀들의 호화 생활이 온라인에 공유되자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네팔은 이미 공공부문 부패가 만연해 국제 투명성 지수에서 낮은 평가를 받아왔다.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해외로 이주하거나 이민 노동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고, 송금은 국가 GDP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층 자녀들의 특권적 삶은 더욱 자극적으로 다가왔고, SNS 차단은 청년층의 분노를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
현재 네팔군은 치안 통제권을 장악하고 국경 수비대와 함께 탈주범 검거에 나서고 있으며, 인도는 1,751㎞에 이르는 국경에 병력을 배치해 탈주범의 월경을 차단하고 있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이번 시위로 인한 국가 기반시설 피해액이 14억 달러, 약 1조9천4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번 사태는 권위적 통치와 연고주의, 기회 박탈이 결합해 폭발한 21세기형 위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정부의 소셜미디어 차단과 강경 진압은 오히려 젊은 세대의 저항을 키우는 역효과를 낳았고, 네포티즘과 특권 체제에 대한 분노는 정치적 체제 불신으로 이어졌다. 임시정부가 연고주의를 끊어내고 청년 세대가 체감할 수 있는 개혁을 단행하지 못한다면, 이번 폭발은 일시적 소요가 아니라 장기적 국가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K-News L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