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대영제국을 밀어내고 세계 최강국으로 일어선 미국의 1950년대는 호황을 누리는 황금기였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들어서 흑인과 여성의 민권 운동이 일어나고 존 F. 케네디의 암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저격, 미소냉전과 베트남 전쟁에 반전운동 등으로 혼란스러워졌다.
말하자면 1960년대는 1950년대의 영광을 잃어버린 시대가 된 모양새였다. 음악계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로큰롤 스타들이 스캔들이나 징병 혹은 은퇴 등으로 잇따라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면서 미국 대중음악이 침체되고 스타 부재의 어두운 시대가 되었다.
이런 와중에 1959년 2월 3일 소형 전세기가 아이오와주 호수 근교에 추락해 버디 홀리, 리치 밸런스, J.P. 리처드슨 3명의 음악인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들의 죽음으로 막 부흥하기 시작한 로큰롤 시대의 종말을 고한 상징적 사건이 되면서 ‘음악이 죽은 날’ 로 불리게 되었다. 이들 중 전설적인 록스타 버디 홀리(Buddy Holly)는 활동 기간이 불과 3년 남짓했지만 음악평론가들로부터 초기 로큰롤 음악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음악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가 만든 기타와 베이스, 드럼, 보컬이라는 4인조로 된 밴드 ‘크리켓츠(The Crickets)’는 록밴드의 원형 모델로 남았다.
헌데 이러한 대중음악의 부재 빈틈을 타고 60년대 초 미국에 상륙해 ‘영국의 침략’이라는 ‘브리티쉬 인베이젼 (British Invasion)’으로 비상이 걸리게했던 비틀즈 즉, 딱정벌레라는 이름도 버디 홀리의 ‘크리켓츠, 귀뚜라미 밴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보통 ‘음악이 죽은 날’이라 하면 버디 홀리가 사망한 1959년 2월 3일을 말하기도 하고, 존 레논이 총에 맞아 죽은 1980년 12월 8일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이 죽은 날’이라는 통칭은 ‘돈 매클린 (Don Mclean)’이 버디 홀리의 비극을 소재로 만든 노래 ‘아메리칸 파이’에서 이 사건을 ‘음악이 죽은 날’라고 한 노래에서 비롯되었다.
이 노래말고도 대부분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Starry, starry night)’로 시작하는 ‘빈센트(Vincent)’ 역시 돈 맥클린의 노래다.
아무튼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는 앞서 말한 1960년대 미국 사회를 잘 은유한 노래로 미의회도서관이 국가기록물로 지정하기까지 했으며 그의 자필 가사 원본은 201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20만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미국 최고’라는 자존심과 생채기난 어두운 민낯이 함께 들어있는 노랫말은 미국 문화에 대한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아주 먼 옛날/그 음악이 어떻게 나를 미소 짓게 했는지 나는 아직도 기억할 수 있어요/…/그러나 2월은 나를 몸서리치게 만들었죠/…/음악이 죽은 그날(The Day the Music Died)’가 반복되는 노래.
어쩌면 그냥 노래라기보다는 일종의 서사시이며 절규어린 미국의 비가(悲歌)라고나 할까?
‘as American as apple pie’라는 숙어의 뜻처럼 ‘아주 미국적인’ 이 노래는 해서 8분이 넘는 무척 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중음악의 하나로 손꼽힌다.
지난 달 26일 한미정상회담 차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백악관 만찬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아메리칸 파이’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그러고 보니 한국에도 버디 홀리와 마찬가지로 불과 3년 남짓 활동하다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가수, 그리고 남긴 앨범은 단 한 장이지만 ‘한국 발라드 음악은 모두 그의 음악을 모방’한 것이라는 평이 나돌 정도로 그 영향이 절대적인 가수가 있었다.
‘사랑하기 때문에’의 유재하다. 해서 한국에서 ‘음악이 죽은 날’이라고 하면 그가 사망한11월 1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