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65㎞에 육박하는 공을 던진다. 타구 속도 190㎞, 비거리 150m짜리 홈런을 친다. 스프린트 스피드는 초당 29피트(ft)로 상위 8% 안에 든다. 투수로서 매년 사이영상 후보에 오른다. 타자로서 언제나 홈런왕에 도전한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이 가진 각기 다른 재능에 관해 얘기하는 게 아니다. 이 모든 걸 혼자 해내는 선수가 있다. 오타니 쇼헤이(大谷 翔平·29). 현재 세계 최고 야구선수를 딱 한 명 꼽으라면 아마도 그의 이름이 나올 것이다. 그는 올해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에서 만장일치 MVP가 됐다. 재작년에도 같은 리그 만장일치 MVP였다. 두 차례 만장일치 MVP는 역대 최초. 많은 이들이 오타니를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로 부른다. 그는 이제 미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5억 달러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디즈니+가 지난 17일 내놓은 다큐멘터리 ‘오타니 쇼헤이-비욘드 더 드림’은 유니콘으로 불리는 야구선수 오타니의 꿈에 관해 얘기한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그가 꿈에 다가가는 방법, 꿈에 가까워져가는 과정에 관해 말한다. 그가 얼마나 위대한 성과를 냈는지는 오타니가 은퇴한 뒤에 수도 없이 회자될 것이다. 그는 아직도 30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오타니가 어떻게 위대해져 가고 있는지를 다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오타니는 이렇게 적었다.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야구. 장래희망은 평범한 야구선수.’ 구리야마 히데키 일본 야구 대표팀 감독은 이걸 보고 탄성을 뱉는다. “아…이 나이에 겸손이라는 걸 이해하고 있었던 걸까요. 말보다는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죠.” 오타니가 존경한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웃으며 말한다. “이렇게 썼다는 것 자체가 전혀 평범하지 않아요.”
‘오타니 쇼헤이-비욘드 더 드림’은 정적이다. 어차피 오타니가 치고 던지고 달리는 역동적인 장면은 유튜브에 검색만 하면 하루종일 볼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오타니를 앉혀 놓고 그에게 꿈에 관한 묻는다. 동시에 그가 동경한 투수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 오타니가 본받고 싶은 타격을 했으며 월드시리즈 MVP에 빛나는 전설의 타자 마쓰이 히데키, 오타니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닛폰햄 파이터스에서 그의 투타 겸업을 적극 지지했던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 현재 현역 선수로 뛰고 있으며 일본 역대 최고 투수로 평가 받는 다르빗슈 유 등이 오타니에 관해 얘기한다. 인터뷰와 오타니 경기 장면을 교차해 보여주는 평범한 형식이지만, 어쩌면 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The Greatest Of All Time) 선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는 시청자에겐 그의 말 하나 하나가 인상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대목은 꿈에 접근해 가는 오타니의 태도다. 그는 계획을 세우고 정진하며 확신한다. 오타니는 18살 때 적었다. “삶이 꿈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꿈이 삶을 만든다.” 이 작품도 오타니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썼다는 만다라트(Mandal-Art) 계획표에 관해 얘기한다. 만다라트 계획표는 정사각형을 아홉칸으로 나누고 정가운데 사각형에 목표를 적은 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나머지 8개 칸에 적는 형식이다. 오타니는 이 정사각형을 다시 위아래 양옆으로 확장해 총 81개 사각형을 채워 넣었다. 당시 그의 꿈은 일본 프로야구 8개 구단에게서 1순위 지명을 받는 것. 이를 위해 그는 몸 만들기, 제구, 구위, 멘탈, 스피드 160㎞/h, 변화구, 인간성, 운 등 8가지가 필요하다고 봤고, 이 8가지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 64가지를 적고 이에 따라 훈련했다.
이 계획표를 본 마쓰이 히데키는 말한다. “8개팀 1순위 지명이라…일단 전 이런 큰 목표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현재 경기를 뛰는 프로야구 선수들도 이 칸을 다 채우지 못 할 거예요.” 이 계획표를 보고 놀라기는 페드로 마르티네스도 마찬가지. “전 현재 그가 거둔 업적보다 이게 더 놀랍습니다. 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계획한대로 꿈을 이뤄간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계획한다니요. 이 종이를 명예의 전당에 걸어 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타니가 일본 프로 무대에서 투타 겸업을 한다고 했을 때, 일본을 떠나 이번엔 미국에서 이도류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그때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오타니는 확신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누구보다 저를 잘 압니다. 그리고 누구도 제 목표를 저보다 잘 알지 못합니다.”
국보로 불렸던 한국프로야구 전설 선동열은 지난해 오타니가 투수로서 166이닝 15승9패 평균자책점 2.33 탈삼진 219개, 타자로서 타율 0.274 34홈런 95타점을 기록하고 시즌을 마치자 ‘오타니와 꿈의 크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선동열은 “오타니는 뛰어난 신체와 재능을 갖췄다. 엄청나게 노력한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도전이 벽에 부딪혀도 오타니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들에게는 허황돼 보였던 꿈이 지금의 오타니를 만들었다. 덕분에 우리도 꿈 같은 야구를 매일 보고 있다.” 오타니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마치 선동열의 말에 화답하듯 말한다. “미래를 생각하는 건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당장 해야 할 일들도 있습니다. 매 순간 제 삶에서 옳다고 느껴지는 걸 해야 하고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