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별세했다. 향년 100세.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키신저 전 장관의 외교 컨설팅사인 키신저 어소시에이츠는 29일 성명을 통해 키신저 전 장관이 코네티컷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유족으론 50년 가까이 해로한 배우자 낸시 매긴스 키신저와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두 자녀, 다섯 명의 손자가 있다.
장례식은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추후 뉴욕에서 추모식이 열릴 예정이다.
가족들은 화환 대신 뉴욕 동물의료센터,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헨리키신저센터 등 기관에 기부해달라고 전했다.
키신저는 미국의 국제 정치학자이자 외교관으로 1972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성사하는 등 이른바 ‘핑퐁외교’로 미·중 수교의 토대를 닦았다
그는 베트남전 종전에도 관여했다. 키신저는 또 냉전 기간 미국과 소련 간 긴장 완화(데탕트)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으며 전략무기 제한협정(SALT) 1차 조약을 이끌어 냈다.
키신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국무장관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외교를 재구성한 냉정한 현실주의자로 평가를 받는다. 국익을 위해 인권을 저버렸다는 비판도 있다.
키신저는 존 F. 케네디부터 조 바이든까지 미국 대통령 12명에게 조언자 역할을 했다.
키신저는 1923년 5월27일 독일 퓌르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1938년 미국에 이민했다. 그는 1943년 미국으로 귀화했으며 미군에 입대해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1951년과 1954년 하버드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키신저는 베트남 분쟁을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르 둑 토 북베트남 협상대표와 함께 197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같은 해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석방을 중재한 전력도 있다. 키신저는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증언했었다.
키신저는 지난 7월 중국 베이징을 깜짝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는 등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