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야”
남을 해 꼬지 하는 일 없이 일상을 선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보통 이렇게 평하곤 한다. 하지만,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사실 이 말에는 착하다거나 선하다는 의미 보다는 ‘한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통념이나 규범을 어기거나 벗어나기 보다 이를 충실히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호모 클라이테스’(Homoclites)의 부류에 속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일 것이다.
정신과 의사 나시르 가에미는 자신의 저서 ‘1급 광기: 리더십과 정신병의 상관성 이해’(A first-Rate: Understanding the Links between Leardership and Mental Illness)라는 저서에서 ‘호모 클라이테스’를 “통상적이고 상식적인 규칙을 따라가는 따분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가에미는 “‘호모 클라이테스’에 속하는 사람들은 남들로부터 호감을 받고 싶어 하고,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집단에 잘 맞물려 어울리는 것을 목표로 살아 간다”고 설명한다. 정해진 규범을 따르려 하고 모나지 않게 살아가려는 평범한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인 셈이다.
프로이드의 마지막 제자로 꼽히는 심리학자 로이 그린커 전문가로도 알려진 가에미는 이 ‘호모 클라이테스’ 개념을 출발점 삼아 한 시대를 풍미해 간 세계적인 지도자들을 열거하며 ‘호모 클라이테스’가 위기를 타파하고, 해결책을 내세울 수 있는 이상적인 리더의 유형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통념을 거스를 줄 모르고 타인으로부터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 하는 평범한 인간 유형은 난세를 돌파해낼 수 있는 이상적인 리더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가에미의 주장이다.
통념을 따르는 ‘호모 클라이테스’ 리더보다는 우울증이나 기분 장애 같은 정신 결함을 지닌 윈스턴 처칠이나 존 F. 케네디와 같은 이들이 오히려 불세출의 리더가 됐다고 주장했다. ‘비정상적’ 리더, 소위 ‘헤테로 클라이테스’(Heteroclites)형 리더들이 좌절을 겪어도 빠르게 회복하고, 남들과 다른 독창적 아이디어로 위기를 타개해 나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성’(nomality)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이 시대 사람들이라면 가에미의 지적은 모두 수용하기 어렵다. 불편하고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통념을 파괴하고 상식을 전복하며, 합리성과 정상성을 내팽개치는 ‘광기’ 어린 리더가 세계 ‘유일무이’ 초강대국 미국을 이끄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비정상성’을 가진 불세출의 리더 보다 다소 고리타분하고 지루하더라도 ‘정상’적인 리더를 고대하고 있다.
더구나 그 ‘광기’에 찬 ‘비정상성’의 리더가 혐오와 분노를 조장해 분열과 위기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국적과 인종, 종교, 그리고 체류신분의 다름을 이유로 갈등을 야기하는 트럼프 시대에 대다수의 ‘우리’들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상’적인 리더의 출현을 갈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탁월한 능력과 현란한 전술로, 또는 ‘반이민’적이고 ‘인종차별’적인 ‘갈라치기’ 방식으로 세계를 갈등과 분열로 이끄는 ‘불세출’의 리더보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정신 상태를 가진 보통의 평범한 리더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헤테로 클라이테스’ 성향이 비정상성을 넘어서 심각한 정신적 결함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랜스 도즈 전 하버드 의대 임상심리학과 교수와 조셉 슈워처 전 국제심리분석학회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 비판에 대한 과민반응,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행동들을 보인다며 전문가를 통해 정식으로 신경정신과 조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며 치료를 권유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자기애성 인격장애(NPD)’ 등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심리학자들도 있을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의 위험한 사례’를 저술한 밴디 리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이 책에서 ‘대통령의 정신 상태가 나라와 개인의 복지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제시한다’고 경고하고,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되려면 지명 절차 과정에서 정신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학자 27명의 지적을 소개하기도 했다.
리 교수는 다른 상황에서는 위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특정한 권력을 쥔 상태에서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혐오와 증오’ 그리고 ‘분노와 분열’의 광기를 가진 ‘비정상성’의 리더가 세계 유일 초강국 미국을 이끄는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강한 경고인 셈이다.
<김상목 K-News LA 편집인 겸 대표기자>
♠이 글은 2019년 12월 미주 한국일보에 실렸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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