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라는 말이 있다. 천지창조부터 신화 혹은 구전은 물론 많은 창작물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헌데 그 이야기들 속을 들여다 보면 대부분 역사적이건 허구적인 이야기이건 주인공 ‘영웅’과 사악한 캐릭터인 악당 ‘빌런(Villain)’이 등장한다.
빌런은 영웅과 적대시하는 사악한 존재로 혹은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또는 사회의 부당한 면을 드러내기 위해 이야기의 주인공 못지않은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멀리로는 그리스 신화의 사이렌, 셰익스피어 ‘오셀로’의 악인 ‘이아고(Iago)’ 가깝게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그리고 ‘스타 워즈’의 ‘다스 베이더나, 배트맨의 ‘조커’ 등이 있다.
우리는 그런 빌런들에 대해 분개하면서도 한편으론 우리가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의 어두운 면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그들을 통해 우리 내면의 갈등이나 두려움 혹은 탐욕 등을 발산시킬 수 있는 대리자로 내심 은근한 매력을 느끼고 즐기는 지도 모른다.
아울러 빌런은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을 반영하는 사회의 거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직면한 사회 문제등에 대해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보게 되고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고대 로마의 농장(Villa)에 속했던 농부를 뜻하는 라틴어 ‘빌라누스 (villanus)’에서 유래한 ‘빌런’은 온갖 차별과 궁핍에 시달리다가 결국 지배층과 귀족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악당으로 변모하게 되면서 창작물 등에서 그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런 빌런에도 여러 종류의 부류가 있겠지만 그 중 자신의 목적을 위해 치밀한 계획으로 상대를 지능적으로 조종하는 마스터마인드 형이 있는가 하면 기만과 교활한 술수로 상대를 속이는 사기꾼 형 등이 있다.
헌데 어떤 형태이건 빌런이 정치적으로 등장하게 되면 잔혹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과거 나치의 독일이 그랬고 작금의 러시아나 북한 등 여러 불량독재국가들이 그렇다. 그렇다면 이런 빌런들을 견제하며 세계 질서를 바로잡고 경찰국가로서 자처해 온 미국은 영웅이 되는 셈일까?
헌데 최근에 미국 정치컨설팅 기업 유라시아그룹이 의외의 경고를 내놨다. 2024년을 정치적으로 해리포터의 최고 빌런인 ‘볼드모트(Voldemort)의 해’로 정의하고 3개의 전쟁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빌런들이 활개치는 ‘끔찍한 해’가 될 거라는 얘기다.
3개의 전쟁,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그리고 ‘미국과 싸우는 미국(the US vs. itself)’이 그것이다.
전 국민이 정치적으로 양분된 가운데 치러지는 11월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정치적 분열을 심화하고 지난 150여년간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으로 미국의 정치-사회구조를 심각하게 훼손함은 물론 세계 안보와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앞의 두 전쟁보다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결국 미국도 빌런이 될 거라는 거다. 이미 바이든과 트럼프가 서로를 향해 독설을 퍼부면서 세계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고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알렉시스 토크빌 (Alexis de Tocqueville)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모든 국민들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이는 우리 유권자들의 선택에 주어진다는 얘긴데. 그러려면 유권자들, 국민들이 빌런 볼드모트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해리포터가 되야하겠지만 그 어느 쪽도 영웅이 아닌 지경에 이르러 선택권마저 상실된 지금, 그 경고가 어쩐지 맹랑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정부는 투표로 선택할 수 있겠지만 국가는 그렇치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