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1세대가 좀 게을렀던 것 같아요. 저부터 딴짓했잖아요. 30년 동안 방송에 나가서 노래 활동을 안 했지요.”
‘가는 세월’의 원로 가수 서유석(79)이 팔순을 앞두고 ‘제2의 노래 인생’ 시작을 선언했다. 1969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제곡 ‘어 타임 포 어스(A time for us)’를 번안한 주제곡 ‘사랑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음악인생을 시작한 그는 올해 데뷔 55주년을 맞았다.
특히 서유석은 19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로 통한다. 특히 김민기, 한대수, 양병집과 함께 ‘포크 1세대’로 통하며 ’70년대 포크계의 저항가수’로 군림했다.
1972년 방송 부적격 등 일부 곡이 금지되자 돌연 잠적, 전국의 대학 등을 돌며 ‘고운 노래 부르기’ 캠페인과 포크송 보급운동에 헌신했다. 그러다 1976년 발표한 곡이 ‘가는 세월’이다. 당시 LP가 100만장이 넘게 팔리는 등 ‘국민 애창곡’으로 통했다. 관조하는 듯한 창법은 아직까지 ‘성대 모사’ 1순위다.
1980년대부터는 당시 MBC라디오 교통안내프로그램 ‘푸른 신호등’, TBS ‘출발 서울대행진’ 진행자로 대중에게 더 널리 알려졌다. 이후 약 30년 간 서울교통방송, 한국교통방송 등 진행자로 그렇게 방송 활동에 더 주력했다.
서유석은 27일 오전 서울 시민청에서 연 신곡 ‘그들이 왜 울어야 하나’ 시연회에서 “30년 동안 방송을 하느라고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다시 한 번 제 인생을 시작하는 뜻에서 노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서유석은 약 10년 만에 신곡을 발표한다고 했는데, 그간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그는 자신의 노래 메시지가 잘 전달될 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사회를 늘 보면서 사회성 있는 노래를 끌고 나가려고 애를 썼다”고 했다.
‘그들이 왜 울어야 하나’는 1960년대를 풍미한 밴드 ‘키보이스’ 출신으로 목회자이기도 한 윤항기가 약 5년 전에 작사, 작곡했다. 윤항기는 “우리나라에서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서유석 당신 뿐”이라며 서유석에게 곡을 선물했다. 서유석은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 평원과 중동 가자지구 모래밭에서 쓰러지는 그 사람들의 꿈들을 어떻게 달래주나 싶어 두루 고민 끝에 이 노래가 제격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비록 한명의 가수에 불과하지만, 지구촌에 웃을 날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부른 노래”라고 했다.
서유석은 코로나19 기간엔 뇌경색을 앓기도 했다. 그는 “아주 혼났어요. 죽을 X을 쌌다”고 돌아봤다. “한 2년 동안은 아무것도 못할 정도였어요. 오른쪽 마비가 올 뻔했는데요. 그 후유증으로 손 마디가 안 퍼져 기타를 못 쳤죠. 다행히 요즘에 와서 기타 연습을 시작했어요.”
이날 서유석은 유튜브 등에 널리 퍼진 자작곡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도 불렀다. 그는 “우리 세대를 몰아치는 젊은 세대는 고민이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나도 좀 각성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곡은 2015년께 서유석의 허락을 받지 않고, 불법으로 편곡·판매한 음원이 온라인에 퍼졌던 곡이기도 하다. 유튜브에서 커버 영상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서유석에 따르면, 대법원은 해당 음원을 제작한 A씨에 대해 저작권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현재 관련해 민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서유석은 “저는 이 곡으로 음반을 낸 적이 없어요. 근데 지방에서 온라인에서 굉장히 유행을 하고 있다고 해요”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또 들려준 ‘생각’은 서유석이 1980년대에 만든 자작곡이다. “제가 방송을 그만두면서 생활 좌표를 잃어서 노래를 만들어 놓고도 활동을 못했어요. 그러다가 6~7년 전부터 다시 이 노래를 꺼내 가지고 가만히 보니까 할 가치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세상를 향해 내는 메시지는 좀 더 차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은 곡”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가요계에선 서유석이 목회 활동을 한다는 소문이 났다. 서유석은 “간증이에요. 소문이 잘못 났는데 전 목사가 아니라 목회는 안 한다”고 정정했다. 그러면서 신앙 활동은 하지만, 음악 활동에 더 열심을 내겠다며 가장 크게 계획 중인 건 대한노인회 관련 활동이라고 전했다. “제가 대한노인회 자문위원장을 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어요. 대한노인회와 함께 전국의 노인들을 위한 한마당 축제를 하려고 해요. 가을부터 투어가 시작이 될 것 같은데, 내년 봄에 끝낼 계획입니다.”
또 서유석은 오는 5월8일엔 마포문화재단이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펼치는 ‘서유석 카네이션 콘서트’에도 참여한다. “어버이를 위한 콘서트지만 꼭 어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서유석은 최근 젊은 뮤지션들을 높게 평가했다. “가사에 보편적으로 전 세대에 걸쳐서 소구하는 힘이 충분히 있다”고 봤다. “나이 먹은 세대가 젊은 세대를 향해 자꾸 손가락질만 할 게 아니에요. 젊은 친구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기가 막히게 세상 얘기를 다 하고 있어요. 우리 세대가 그걸 알아듣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는 거지요. 걔네들은 하나도 문제가 없어요.”
서유석은 나이가 들어 점점 더 유연해지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왜 울어야 하나’는 제가 불러서 빛을 볼 지 안 볼 지 모르겠어요. 임영웅 씨가 불렀으면 금방 빛을 봤을 겁니다. 껄껄.”
서유석은 이날 많은 이들이 자신의 대표곡 ‘가는 세월’과 자신을 일치시켜 생각하지 못한다고 겸손하며, 이 곡을 들려줬다. 그런데 그는 ‘가는 세월’도 노래 하나로 붙잡은 ‘평생 가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