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 이르기를 가능한 전쟁은 피하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명심해야 할 다섯 가지 항목이 있다고 했다. 이른바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이다. 전쟁의 시기를 알고 승리할 수 있는 지리적 요건을 잘 파악하며 훌륭한 장수의 지휘아래 한 마음으로 사기를 높히는 것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은 무엇보다 참다운 면모라 할 수 있겠다.
1965년 11월 미국은 베트남과의 전면전을 펼치기 앞서 베트남의 지형을 파악하기 위한 시험전에 한국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할 무어(Hal Moore) 중령을 공수부대 대대장으로 임명하고 파견했다.
무어 중령은 자기 생애 마지막 전투가 될 지도 모를 출전에 대비해 아내에게 유언장을 남기고 베트남으로 떠난다. 395명의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어린 부하들을 이끈 헬기 고공침투로 3일간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 지역을 점령한 월맹군은 모두 정예요원으로 그 수가 아군보다 5배나 많다는 것을 선발대가 모두 희생당한 뒤에야 알게 된다.
오직 헬기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험준한 협곡에서 포위된 채 하나씩 둘씩 병사들의 목숨을 잃어가고 패색(敗色)은 짙어진다. 이곳은 바로 10년 전 프랑스 군인들이 몰살당했던 지역으로 일명 ‘죽음의 협곡’이라 불리는 악명높은 ‘이아드랑’ 계곡이었다. 프랑스는 이 전투의 패배로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되고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계기가 된다.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월맹군이 공포에 빠진 미군들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들어가자 본부에선 작전의 실패를 인정하고 무어 중령의 복귀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부하들을 남겨두고 홀로 전장을 등질 수 없는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브로큰 애로우(Broken Arrow)’를 외친다.
‘브로큰 애로우’는 아군의 진지나 거점이 적에게 완전히 포위당해 온전히 빠져나갈 수 없는 처지 등으로 괴멸당할 위협에 처해 있는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아군의 생사에 상관 없이 무차별 폭격을 퍼붓는 가장 최후의 선택으로 양쪽이 모두 패배하고 해를 입는, 말하자면 양패구상(兩敗俱傷)을 의미하기도 한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무어 중령은 부하들을 버리고 가느니 차라리 그들과 함께 적들과 싸워 죽을 각오로 이를 요청한 것이다.
곧이어 미 공군의 지상 폭격이 감행되고 월맹군의 추격로는 봉쇄됐지만 무어 중령의 부대도 폭격에 희생된다. 아군이 아군을 죽이는 처참한 상황이 된 셈이다. 하지만 전세가 미군에 조금씩 유리해지기 시작하면서 무어 중령은 월맹군 작전을 알아내고 최후의 반격을 위한 마지막 작전 지시를 내린다. 그 결과 적군 1,800 여명에 이르는 전사자를 내는 등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히고 기적같은 승리를 이끌어낸다. 무어 중령이 실전을 바탕으로 쓴 책을 영화화한 ‘위 워 숄저스(We Were Soldiers)’ 이야기다.
헌데 출정에 앞서 무어 중령이 한 연설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우린 죽음의 계곡에 들어간다. 내가 맨 먼저 적진을 밟고 맨 나중에 나오겠다. 내 뒤에 누구도 남겨두지 않겠다. 우리는 죽든 살든 같이 고국에 돌아온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얼마 전 전세계로 전송돼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목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마지막 군인의 사진’이었다. 군장을 메고 한 손에 개인 화기를 들고 공항 관제탑을 등진 채 수송기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육군 소장의 모습이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철군 작전을 완료하고 맨 끝에 수송기에 오른 크리스토퍼 도너휴 미 공수사단장이었다. 1992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한 뒤 30년째 야전을 누비고 있는 백전노장이다.
시민들과 부하들을 먼저 보내고 마지막 비행기에 가장 늦게 올라타는 것으로 그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 것이다. 수송기는 8월 30일 밤11시 59분 카불공항을 떠났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그는 부하들에게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모두 자랑스럽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미국만 그런 건 아니다. 1988년 아프가니스탄 주둔 옛 소련군이 철수할 때도 맨 마지막에 아무다리야 강에 놓인 ‘우정의 다리’를 건넌 보리스 그로모프 상장(上將) 역시 ‘내 뒤에 단 한 명의 소련 병사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이러한 리더들의 모습을 보면서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TED강연으로 유명해진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이 소개한 그의 저서 중 한 토막이 떠오른다.
어느 한 전장에서 식사시간이 되었다. 부하들에게 배식을 다하고 나자 지휘관에게는 남은 음식이 없었다. 그러자 이를 알게 된 부하들은 그에게 조금씩 음식을 나누어 건네주었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Officers eat last)’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미 해병대의 퇴역 장군 조지 플린 (George Flynn)과 인터뷰하면서 ‘미 해병대가 어떻게 특별한 성과를 올리는 세계 최고의 부대가 될 수 있었는가?’라고 묻자 플린 장군은 주저없이 ‘장교는 마지막에 먹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위기상황에 맞닥뜨리면 자기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리더는 이런 생존본능 마저 억제하고 조직과 구성원들을 우선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해서 미 해병대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규칙이 된 ‘장교는 마지막에 먹는다’는 형식적인 슬로건이나 일시적인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교 혹은 리더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하는 골든 룰(Golden Rule)로써 이러한 리더의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을 실천하는 행동을 통해 조직 구성원들로 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되고 더 나아가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키워지고 조직을 지탱해 주는 문화형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터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자신보다 부하의 생명을 먼저 돌보고 책임지는 지휘관의 몸을 사리지 않는 희생적 헌신, 그것을 의무이자 명예로 아는 군(軍) 정신과 전통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전투력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리더들의 품격이 어찌 군(軍)에만 국한되는 것이겠는가?
<칼럼니스트 김학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