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 가자지구 전쟁 개전 이래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열리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한껏 고조된 반발 여론에도 네타냐후 총리가 전시 정책에 변함은 없다며 완강히 버티고 있지만, 향후 여론 향방에 따라 네타냐후 총리의 선택지는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대 70만명 모인 대규모 시위…네타냐후 “굴복 않겠다”
2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등에선 최대 70만명이 운집해 정부에 이틀 연속 인질 석방을 촉구했다.
이스라엘 최대 노동조합인 히스타드루트는 총파업에 나섰고, 이스라엘 주요 국제 공항을 포함해 전국 곳곳이 폐쇄되는 등 마비됐다.
법원 판결로 총파업은 일단 중단됐지만, 성난 시민들은 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은 총리관저 인근에서 시위를 계속했고, 예루살렘에선 최소 12명이 체포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물러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인질 6명이 사망한 데 대해 “용서를 구한다”면서도 필라델피 회랑에서 결코 철수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필라델피 회랑이 하마스의 생명선인 만큼 이스라엘이 통제해야 한다며 “휴전 협상에서 이 문제 관련 압박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쟁 목표를 관철할 때까지 하마스에 양보는 없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인질은 이스라엘 최대 약점…네타냐후 내각 균열
필라델피 회랑은 가자지구와 이집트 국경의 완충 지대로, 하마스는 협상에서 이스라엘군 철수를 요구해 왔다.
이스라엘도 철군은 결코 안 된다는 입장으로, 내각은 지난달 31일 압도적 찬성으로 필라델피 회랑에 군을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인질 6명이 사망한 채 귀국하면서 이스라엘 내각은 전환점을 맞게 됐다. 인질은 하마스가 쥐고 있는 이스라엘의 최대 약점으로,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는 협상에서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마스는 2일 성명을 내 이스라엘군이 접근하면 인질을 처형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이번 사건 책임이 전적으로 이스라엘에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이스라엘군이 인질 구출 작전에 성공, 4명을 생환시키면서 새롭게 내려진 프로토콜이라고 부연했다. 지시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이스라엘 국민들의 반정부 여론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했다.
네타냐후 정부에는 균열이 나고 있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지난 1일 내각회의에서 “인질들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필라델피 회랑을 우선시한다는 사실은 도덕적 수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동시에 극우 이마르 벤그리브 안보장관과 베랄젤 스모트리치 재무장관도 하마스에 유화적인 협상 태도를 보이면 내각에서 탈퇴하겠다고 으름장 놓고 있다. 두 장관이 내각에서 나가면 연정은 붕괴된다.
이들은 네타냐후 연정이 무너지면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축소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말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막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법원에 총파업 중단 가처분을 신청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반발 여론도 상당하다. 시위대는 경찰이 진압에 나서자 “우린 경찰 개개인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당신들의 상관인 벤그리브만 반대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전환점 맞은 네타냐후…대규모 시위 계속되면 선택지 좁아져
이번 시위와 유사한 규모의 대규모 집회가 잦아지면 네타냐후 총리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네타냐후 총리가 당장 백기를 들진 않겠지만, 한껏 고조된 비판 여론이 사그라지지 않으면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CNN은 “시위대가 경찰에 얼마나 용감하게 맞서는 지가 잠재적 변화를 가늠할 척도가 될 것”이라며, 정부 압력에 맞서 노조가 얼마나 단결된 모습을 보이는 지가 추진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마스도 물러설 여지가 없다. 온건파 지도자의 사망으로 최고 권력을 손에 넣은 신와르는 이번 전쟁 발단이 된 10월7일 공격을 설계한 인물로,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드러내고 있다.
CNN은 “이스라엘의 전망은 암울하다”며 “네타냐후의 정치적 운명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인질 석방 기회는 희미해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가자지구에 남은 생존 인질은 60여명, 사망한 인질은 35명가량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