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제시하기로 한 ‘승리 계획’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WSJ은 복수의 미국 관료가 승리 계획을 놓고 더 많은 무기 지원과 서방 미사일의 러시아 본토 장거리 타격 제한 해제를 요구해 온 기존의 우크라이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계획안 전문을 보지도 못한 미국 고위 관료 사이에서 이미 부정적 기류가 흐르고 있는 셈이다. 한 미국 고위 관료는 “별로 인상적이지 않다. 새로운 내용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최근 몇 주 동안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승리 계획 내용 일부를 전달받은 바이든 행정부 최고위급 인사가 현재 계획의 준비도에 실망했다는 증언도 미국 정부 내부에서 나왔다. 미국 정부는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인 넉 달 안에 바이든 행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가시적인 내용을 듣기를 바랐지만 우크라이나 측 계획은 이에 부응할 만큼 구체적이거나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미국 국무부 고위 관료는 승리 계획은 우크라이나 전장 요구사항을 비롯해 국내 정치 개혁과 광범위한 경제 영역 의제를 포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기 지원과 사용에 관련한 부분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내용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승리 계획이 군사·외교·경제 부분을 포함해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방 관료는 이와는 온도 차를 보이며 부정적인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튿날 백악관을 방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승리 계획을 전달할 방침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체 내용을 전달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과 유럽 관료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금껏 막후에서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최대한 요구사항을 이야기해 왔다. 대외적으로 표출되지 않았지만 승리 계획에도 미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이 상당 부분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독일과 함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장거리 타격하는 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줄곧 고수해 왔다. 영국, 덴마크, 폴란드 등은 우크라이나가 장거리 폭격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이들을 설득해 왔지만 두 국가는 입장을 선회하지 않고 있다.
승리 계획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 측 종전 방안은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 뒤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승리 계획이 4가지 주요 사항과 종전 뒤 상황과 관련한 5개 항으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4가지 주요 사항은 ▲나토 회원국 사이 상호방위조약과 유사한 서방의 안전보장 요청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주 진격을 계속해 영토 협상을 풀어갈 패 제공 ▲’특정’ 첨단 무기 요청 ▲파괴된 우크라이나 경제 재건을 위한 국제적 재정 지원 등이다.
일각에서는 승리 계획에서 말하는 승리라는 단어가 가진 모호성을 지적하는 보도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WSJ은 “적어도 공개적으로 미국 고위 관료는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더 이상 우크라이나가 잃어버린 영토를 모두 되찾는 것과 관련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앞서 더타임스는 “폴란드와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추악한 평화’를 만들더라도 전쟁을 끝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라면서 “서방은 모순을 해결하는 대신 우크라이나가 결정할 일이라는 공허한 주문 뒤에 숨어 있다”고 평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회담할 것으로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