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결혼하고 사생활이 자주 구설수에 올랐으며 리얼리티 쇼 제작자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 보수적인 정통 복음주의 백인 기독교인들의 지지를 간신히 이끌어낼 수 있었다. 당시 선지자를 자처하며 복음주의 운동을 이끌던 랜스 월나우(68)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월나우는 성령의 부름에 따른 정치 참여를 “영적 전쟁”이라고 부르는 신사도적 개혁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의 선도자격 인물이다.
그런 월나우가 현재 트럼프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며 민주당은 “어둠의 세력”이라며 선거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일 보도했다.
월나우는 “커리지 투어(Courage Tour)”라는 대규모 부흥회를 이끌면서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트럼프 러닝메이트 JD 밴스 상원의원의 경합지역인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열린 월나우 부흥회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역대 공화당 대통령들은 복음주의 기독교인 유권자들의 몰표를 받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를 자처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0년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70% 지지를 받았고 4년 뒤에는 80%의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는 달랐다. 그의 문란한 사생활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나우가 2015년 트럼프를 지지하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주장하면서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설득했다.
인기 높은 부흥 전도사인 월나우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신학 교리를 제시한 대표적 인물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월나우를 위험인물로 간주한다. 기독교가 사회를 장악해야 한다는 기독교 지상주의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텍사스 주 댈러스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월나우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행동주의를 대변한다. 그는 큰 교회에서 설교하는 대신 팟캐스트와 유튜브, 페이스북 등 온라인으로 설교한다. 그의 팔로워가 100만 명에 달한다.
월나우 등 초교파 지도자들을 추종하는 기독교인들이 미국에서 3300만 명에 달한다. 미국 가톨릭 신도가 7400만 명, 프로테스탄트 교회 신도가 5400만 명인 것과 비교할 때 무시못할 숫자다. 전체 기독교 신자들의 10%가 신사도적 개혁운동을 지지한다.
영적 전쟁
월나우는 복잡한 교리를 쉬운 슬로건으로 전환하는 재주로 스스로를 밈(meme) 시대의 복음주의자로 만들었다. 재담으로 신도들을 끌어들이는 능력도 탁월하다. 2016년에는 자신이 숭배한다는 코미디언 재키 메이슨과 맨해튼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찍은 사진을 공개하는 등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신념은 전투적이다. 그는 트럼프를 미국을 좌파 이데올로기로부터 구하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며 옹호한다. 2015년 많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트럼프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간주하던 때 월나우는 “신의 혼돈의 후보(God’s Chaos Candidate)”라는 저서에서 기독교 신자가 아닌 트럼프를 바빌론에 억류된 유대인을 해방한 페르시아왕 키로스 2세에 비유했다. 신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신의 부름을 받은 인물이라며 칭송한 것이다.
월나우는 사회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신사도 개혁운동의 “일곱 산 언덕(Seven Mountain Mandate)” 전략을 들먹이며 트럼프가 기업과 언론의 2개 산을 넘은 사람으로 정부를 이끌 자격이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월나우는 “어둠의 세력”이 대선에 개입했다면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가나안 왕국에서 바알 신 숭배를 퍼트려 성경에서 악녀로 등장하는 “이세벨의 영혼(Jezebel spirit)”이라고 부른다.
2020년 대선 뒤에는 신사도개혁운동 지도자들이 트럼프의 선거 부정을 지지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워싱턴과 각 주의 주도에서 “여리고 행진”을 벌였다. 하나님의 군대가 성벽이 무질 때까지 여리고를 포위했다는 성경의 일화를 빗댄 행동이었다.
대선 한 달 뒤 월나우는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열린 여리고 행진에서 “선거가 도둑맞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중 기독교 반란이 시작됐다…저들은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이듬해 1월6일 의회 폭동 때도 워싱턴을 방문했었다.
뒤에 자신은 의회 폭동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너무 추워서 엉덩이가 얼었다”며 “트럼프 호텔에 가 토마토 수프를 먹었고 사기극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날 밤 충돌현장에서 기독교 우파 심야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파 반대 시위대들을 비난했었다.
월나우는 트럼프를 사적으로 잘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월나우는 트럼프를 지지하면서 인기를 얻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트럼프가 2019년 백악관 종교 담당으로 임명한 폴라 화이트-케인의 소개로 2016년 트럼프 타워에서 트럼프를 처음 만났다. 그해 초 월나우는 마러라고의 트럼프 별장에서 턱시도 차림으로 찍은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기독교인들의 자기 개발 지도자
펜실베이니아 주 벅스 카운티에서 태어난 월나우는 밸리 포지 군사 아카데미 대학교에 다니면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다. 20대에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다가 1980년대와 90년대 펜실베이니아와 로드아일랜드 주에서 초교파 교회를 이끌었다. 피닉스대(현재의 프리머스신학대)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여러 선교단을 운영했고 기독교인들의 자기 개발자를 자처했다.
월나우는 트럼프처럼 기념주화나 육골즙 등 여러 제품을 만들어 판매했고 지난달에는 보조식품을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제품에는 “미국의 운명을 두고 앞으로 30,40일 동안 영적으로 집중하려는 사람들에게 특효”라는 문구를 붙였다.
지난 7월 위스콘신 주에서 열린 부흥회에는 전국 각지의 기독교인 수만 명이 뜨거운 여름 햇볕과 폭우를 견디며 참가했다. 첫날 밤 테네시 주 부흥 전도사인 마리오 무리요가 수십 명을 낫게 했다고 주장했다. “천식, 활액낭염, 두통 등 통증과 엉덩이, 다리, 발 통증이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다음날 월나우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부흥회 연설자 대부분이 청중들에게 꼭 투표하라며 친구들과 가족, 이웃들에게 투표 등록을 하도록 설득하라고 촉구했다. 트럼프 지지 단체인 아메리카 퍼스트 워크스(America First Works)가 제공한 전단지를 배포하면서 군중들에게 투표 참여를 권했다. 전단지의 QR 코드를 촬영하면 트럼프의 정치 주장이 등장하고 그를 지지하겠다고 선서하도록 돼 있었다. 위스콘신 주 부흥회에 앞서 조지아, 미시간, 애리조나 주에서도 부흥회를 열었다.
월나우는 교리에 어긋나는 진보주의에 나라가 잠식되는 것을 기독교인들이 묵과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목사들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가 지옥 구덩이에서 온 영혼들에게 점령당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월나우는 청중들에게 자신이 “글래디에이터(Gladiator)”라는 영화를 보면서 받은 계시라면서 주인공 소수의 병력으로 로마 전차부대를 무찌르는 장면의 주인공 막스무스를 흉내냈다.
“여러분 가운데 막시무스처럼 부름을 받은 사람이 누구냐?”고 목청을 높이고 도끼질을 하는 손짓과 함께 “하나로!”라고 외치자 수많은 청중들이 똑같이 도끼질을 하며 따라했다.
관련기사 트럼프 옆에서 점프 일론 머스크 난 다크 마가… 트럼프가 이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