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핵무장 가능성 두고 미 전문가들 논쟁 뜨겁다
미국의 안보전문가들 사이에 한국, 나아가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북한의 핵무장이 한국과 일본에 직접적인 핵위협이 되는 한편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을 맞상대하려면 두 나라가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인식이 미국 조야 일부에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미·일 3국 정부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의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 핵무장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열핵폭탄을 완성하고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각종 신형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함에 따라 두 나라에 대한 핵위협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이미 보유한 데 이어 미국의 보복 공격을 반격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을 보유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임에 따라 한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이 과연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미국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이 핵무장하는 것을 미국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행정학과 제니퍼 린드 교수와 대릴 프레스 교수가 지난 7일자 미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한국이 독자적 핵무장을 해야하는가?”라는 글이 그같은 의견을 대표한다.
두 교수는 ‘한미동맹이 일견 공고해보이지만 강력한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문제에 봉착해 있다’면서 ‘이를 해소하는 유일한 방안이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한국이 미국을 악용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함에 따라 한미동맹이 상처를 입었지만 근저에는 보다 장기적 흐름이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선 중국의 부상이 미국과 한국의 대외정책 우선 순위에 차이를 만들고 있다고 두 사람은 지적했다.
미국으로선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국가안보 목표이며 미국은 중국이 제기하는 위험을 억제하는 비용과 위험이 커짐에 따라 동맹국들이 부담을 나누길 기대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같은 기대에 절대 호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으로선 미국과 동맹이 북한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고 중국을 견제하는 건 한국의 최대 교역상대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이 주도하고 인도, 호주 일본이 참여하고 있는 ‘쿼드’에 가담하길 꺼리는 것도 이 때문이며 한국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것 못지않게 중국이 영원히 인접국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북한의 핵능력이 증강된 점이 상황을 훨씬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두 사람은 지적했다. 평양이 수소폭탄을 완성하고 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ICBM을 보유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미국과 동맹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유사시 한국을 지키는 대가가 매우 클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미국에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두사람은 지적했다.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북한 지도자들이 한국의 재래식 무기 우위를 상쇄하기 위해 핵무기 사용을 적극 검토할 것이고 미국이 보복하면 미국 도시 여러 곳을 핵으로 공격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 미국은 정치, 경제, 사회적 대혼란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들은 미국민들은 이런 가능성에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필자들은 미국 핵우산의 신뢰도 약화 문제가 냉전시대 유럽에서도 있었다면서 옛 소련의 핵위협이 커짐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가 핵무장을 하는 한편 미국의 핵무기를 유럽 각지에 배치해 유사시 유럽 각국이 미군의 핵무기를 넘겨받는 방식으로 대처했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은 유럽 주둔 미군을 늘리고 전진배치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하면 자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했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주한미군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으며 비무장지대에서도 갈수록 멀리 배치되고 있는 것도 냉전시대 유럽 상황과는 대조적이라고 두 사람은 지적했다.
이에 따라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허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두사람은 강조했다. 이를 통해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고 나아가 중국이 전에 없이 강력한 군사력과 영향력을 투사하는데 따른 중장기적 안보 위협에도 대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비상한 상황”에서 탈퇴를 허용하는 핵비확산조약(NPT)의 X조항이 바로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면서, 북한의 불법적인 핵무장이 초래하는 위협이 바로 비상한 상황이고 한국의 핵무장은 북한의 핵위협에 비례적으로 맞서는 대응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한국민의 70%가 핵무장에 동의한다고 밝히고 한국이 최근 잠수함발사 미사일을 시험한 것을 핵무장을 향한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몇 기 안되는 재래식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을 보유하는 건 지나치게 비용이 크며 잠수함은 핵억지력을 보장하는 이상적인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한국의 핵무장은 핵확산을 막으려는 미국의 핵심 정책에 반하는 것이지만 약화한 동맹을 다시 강화하는 최선의 방책이 될 수 있다면서 한국이 핵무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미국은 그 책임을 북한에 돌리고 귀중한 동맹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두 사람의 글이 발표되자 이를 반박하는 다른 미국 전문가들이 장문의 기고문을 발표했다.
미 스탠포드대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국제안보 및 협력 센터 연구원으로 있는 로렌 수킨과 카네기재단 핵정책프로그램 책임자인 토비 달튼이 26일(현지시간) 미국의 안보전문 인터넷사이트인 ‘워 언 더 록스(War On the Rocks)’에 “한국이 독자 핵무장을 하면 안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들은 북한의 핵능력이 강화되고 한미 동맹에 긴장상태가 이어지면서 한국의 보수적 대선후보들이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고 미국이 반대할 경우 독자적 핵무장을 해야한다는 주장을 펴는데 이어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제니퍼 린드와 대릴 프레스 두 사람이 이를 지지하기까지 했다면서 자신들은 한국의 핵무장이 위험하고 효과도 없으며 동맹과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은 한미동맹이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핵확산은 잘못된 처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동맹의 신뢰문제는 한국의 핵무장과 같은 극적인 처방이 필요한 상황에 이르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그보다는 비핵무기 수단으로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북한과 중국의 안보위협에 대처하는 현실적이고 안전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한국이 미국의 사드 대공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중국의 경제 제재로 75억달러(약 8조8000억원)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를 당했다면서 한국이 쿼드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만하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은 중국과 냉전을 벌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나아가 한국이 동남아시아 각국 및 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신남방정책’이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데 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중국의 직접적 위협이 더 커질 경우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이나 미국 핵무기 재배치 필요성이 커질 수도 있지만 상당기간 동안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각자의 이익에 따라 중국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한미동맹의 정치적 군사적 기초가 매우 강력하다면서 북한의 핵무장이 한미동맹의 신뢰성을 떨어트린다는 린드와 프레스의 주장을 각종 여론조사 자료를 인용하면서 반박하고 한미동맹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두 사람의 주장이 과장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동맹 신뢰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린드와 프레스가 주장한 정도는 아니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핵무장을 처방하는 것은 해결책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의 핵무장이 북한과 중국이 제기하는 안보 위협을 줄일 수 있는지는 북한과 중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의 핵무장은 중국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수단이 되기 어렵다고 두사람은 지적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중국에 대한 핵위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전쟁을 이어갔으며 핵을 보유한 인도와의 분쟁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핵무장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는 중국이 핵무장한 한국에 강압적 작전을 수행하지 않으리라고 보기 어렵고 그보다 중국은 한국의 핵무장을 막으려고 경제적, 군사적 압박을 더 강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두 사람은 주장했다. 이런 점을 모두 감안하면 한국의 핵무장이 한국의 안보를 더 증진시킬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두 사람은 강조했다.
두사람은 한국의 핵무장이 북한과의 관계도 한층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미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핵전쟁 연습이라고 비난하면서 각종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한국의 핵무장에 대해 북한이 맞서려는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보다는 북한이 핵무장을 보강하고 핵무기 사용을 우선시하거나 군사적 위기 상황에서 우위를 차지 하기 위해 위험을 더 감수하게 만들 것이라고 두 사람은 주장했다. 또 핵무장에서 북한을 압도하는 미국조차 북한의 핵무장을 억제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핵무장한 한국이 “눈에는 눈” 식의 군사작전을 보다 공격적으로 펴게 되면 위기가 빠르게 고조되면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사용과 같은 한계점을 넘기 쉽도록 만든다고 예를 들었다. 이미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는 남북한 사이에서 한국의 핵무장이 위기를 가속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응속도가 빨라지고 긴장이 높아지면 오판 가능성이 커지고 핵사용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에 한국의 핵무장은 분쟁이 발생한 경우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미국과 한국이 동맹을 더욱 강화해 예상 가능한 분쟁 악화상황에 잘 대비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미국을 이간질하는 북한의 “쐐기” 전략에 맞서 응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평화시의 긴밀한 논의와 위기시 의사소통의 강화, 합동작전능력의 강화를 통해 동맹의 신뢰를 높이고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함으로써 비핵 위기 상황에 보다 잘 대응하는 한편 사이버작전과 같은 새로운 위협에 대한 대처능력을 강화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미국은 한국의 재래식 무기 능력 강화를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두 사람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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