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나소닉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1979년 사재를 털어 마쓰시타 정경숙 (松下政經塾)이란 정치학교를 세우고 일본 정계의 핵심 인재들을 양성했다. 실제로 이곳 졸업생 250여 명 중 40% 정도가 정계로 진출했다.
헌데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이 정경숙을 설립할 때 모델로 삼은 곳이 있다. 바로 쇼카손주쿠 (松下村塾)다. 에도 막부 말기, 1857년 요시다 쇼인이 야마구치현에 세운 조그만 4평짜리 다다미방 서당.
이곳에서 불과 2년 동안 80여 명의 제자를 가르쳤지만 그 영향력은 일본 근대사를 뒤흔들었다. 쇼인의 제자들은 메이지 유신을 이끌고 정부의 핵심을 장악했던 것이다. 특히 그 중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 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했을뿐만 아니라 일본 초대 총리이자 조선 초대 통감으로서 한일합방의 설계자였다.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조선 초대 총독이 되어 무단통치를 시행했으며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군부 개혁의 주역으로 세 차례 총리를 지냈고, 그의 후예들은 150년 넘게 일본 정치를 주름잡았다.
쇼인의 영향은 단순한 교육을 넘어 한국침략론인 ‘정한론(征韓論)’의 씨앗을 뿌리며 러시아나 미국 같은 강국과는 우호관계를 맺지만 조선과 만주, 중국 등은 점령해야 하는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의 논리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그대로 실행되었다. 그의 위패는 야스쿠니 신사에 1호로 모셔져 있다.
마쓰시타 정경숙은 교육 철학도 이 쇼카손주쿠를 본땄다. 엄격하게 짜여진 학사일정에 따라 새벽 6시에 기상해 청소로 시작해서 차도, 서도, 검도 같은 일본 전통교육은 물론 극기훈련에 ‘21세기는 아시아가 번영할 차례이며 그 중심은 일본’이라는 사상을 주입한다. 2년간의 교육을 받은 후 ‘일본 중심 번영 철학’의 전도사로 정계에 진출한다.

지난 21일, 일본 역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다카이치 사나에(髙市 早苗), 64세. 그녀는 자민당 총재로 선출되어 140년 만에 여성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다. 헌데 그가 마쓰시타 정경숙 5기 출신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이로써 마쓰시타 정경숙은 제1기 졸업생, 노다 요시히코 이후 두 번째 총리를 배출하게 된 거다.
그녀의 등장은 단순한 ‘유리천장’ 깨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신적 후계자로 불리는 그녀는 헌법 9조 개정을 주장하며 평화헌법의 군사적 해석을 확대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통해 전쟁 유죄자 추모를 고집하는 강경파 인물이다.
아베 신조가 2006년 총리 취임 직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요시다 쇼인을 꼽았던 것처럼, 그녀도 그 정신적 계보를 이어 ‘여자 아베’로 불릴만큼 아베 못지 않게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여러 차례 참배했다. 그리고 총리가 되어도 참배를 계속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이런 다카이치 사나에의 총리 취임은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니다. 그것은 일본의 보수주의가 단순한 전통 수호를 넘어 글로벌 우익주의의 물결 속에서 다시금 부상하려는 신호이자 요시다 쇼인에서 시작된 일본 보수주의의 계보가 21세기에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상징으로 보인다.
이로써 150년 전 쇼카손주쿠에서 시작된 정한론의 목소리가 오늘날 마쓰시타 정경숙을 통해 다시 들려오고 있는 듯하다.
결국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가 메이지 유신의 요람이었다면, 마쓰시타 정경숙은 21세기 일본 보수주의의 산실로써 이 두 학교는 시대를 넘어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셈이니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이 조선 침략으로 이어졌듯,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들의 ’21세기 일본 중심 번영론’이 다가올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은 아닐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