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 ‘플래시라이트(flashlight)’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한국계 미국인 작가 수전 최는 9일(현지시간)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오랜시간 한국의 역사와 유산을 탐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수전 최는 이날 주영한국문화원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개최한 ‘문학의 오후’ 행사에 참석해 이같이 말하면서 “그 안에는 단일한 진실보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기억의 구조가 존재한다. 바로 그 복잡성이 이야기에 생명력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부커상 발표를 하루 앞두고 열린 이날 행사는 K-북 해외 홍보·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수전 최의 ‘플래시라이트’를 중심으로 작가의 창작 세계를 조명했다. 사회는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 소속 시인 겸 편집자 사라 하우가 맡았다.
‘플래시라이트’는 20세기 아시아와 미국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국제관계 속 인간이 겪어낸 기억과 서사를 다룬다. 작품은 10살 루이자와 재일교포 아버지, 미국인 어머니의 가족을 중심으로 재일교포 사회와 미국 교외를 오가며 20세기 역사적 격랑 속에 휘말린 이야기를 담아냈다.
수전 최는 행사에서 ‘플래시라이트’의 첫 페이지를 낭독했다. 이어 작가와 참석자들이 문학 창작의 윤리성과 서사적 책임, 기억과 실종, 가족과 정체성의 경계 등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기억과 정체성 등을 논하는 대화에서는 ‘플래시라이트’가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기억이 교차하는 경계에서 태어난 작품이란 점이 언급됐다.
수전 최는 “기억을 재구성하는 행위는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윤리로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대담 이후 관객과의 질의에서는 이민가 가정의 경험, 정체성과 언어의 경계, 문학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의 기억을 형상화하는지 등이 다뤄졌다.
수전 최는 ‘분노를 글로 표현할 때 어떤 마음으로 임하느냐’는 관객의 질문에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상처를 직면하고 언어로 전환함으로써 글쓰기의 치유력을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답했다.
선승혜 주영한국문화원장은 “‘플래시라이트’는 지정학적, 역사적 서사가 한 개인의 기억으로 다시 쓰이는 과정을 통해 예술로 승화된 ‘기억의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부커상 최종 발표를 앞두고 격랑과도 같았던 한국 현대사가 세계 문학의 언어로 승화돼 소녀의 시각에서 단단한 힘으로 표현해낸 수전 최를 직접 만날 수 있어 더욱 뜻깊었다”고 말했다.
부커상은 1969년 제정돼 영국·아일랜드에서 영어로 출간한 소설에 수여되는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이다. 2016년에는 번역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수상한 바 있다.
올해 부커상은 11일 오전 6시 30분(현지시간 10일 오후 9시 30분)에 발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