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단속이 고용 현장으로 확장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경 단속과 도시 내 불법체류자 체포 중심의 기존 정책 흐름이 이제는 고용주와 근로자의 노동허가 검증 제도인 E-Verify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이민정책 전문 연구기관 MPI(Migration Policy Institute)는 최근 분석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추방 기조가 E-Verify를 차세대 단속 축으로 만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E-Verify는 신규 채용 시 고용주가 노동허가 보유 여부를 연방 데이터베이스로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도입된 지 거의 30년이 지났음에도 미국 전체 고용주 중 약 14%만 사용하고 있다.
MPI는 이를 두고 “E-Verify는 한 번도 전국적 고용검증 체계로 기능한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고용 현장에서는 프로그램이 실제 노동자 본인의 서류인지 확인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사용을 꺼리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트럼프 행정부는 TPS와 패럴 프로그램을 잇달아 종료해 수백만 명의 이민자가 노동허가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고용주에게 E-Verify를 통해 신규뿐 아니라 재직 직원의 신분까지 재확인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E-Verify는 서류의 진위를 확인하는 데 그칠 뿐 제출자가 본인인지 확인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해 신분 도용이나 잘못된 불일치 판정이 발생해 합법 노동자까지 해고 위험에 노출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메시지가 일관되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기관에서는 고용주에게 “E-Verify를 사용해 신분을 점검하라”고 요구했지만, 다른 정부 관계자는 E-Verify 결과만 신뢰한 고용주를 향해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난한 사례도 있었다. MPI는 “고용주에게 시스템 사용을 강제하면서도 그 결과를 믿지 말라는 메시지는 제도 운영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고 분석했다.
E-Verify 전국 의무화 논의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다시 부상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2025년 여러 차례 의무화 법안을 제출했지만 기업계 반발과 산업별 이해관계 충돌로 과거와 마찬가지로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농업, 건설, 서비스업 등 이민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는 산업은 시스템 오류로 인한 고용 리스크와 행정 부담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해 왔다.
고용 현장 단속은 이미 강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조지아 현대차 배터리 공장에서 진행된 대규모 단속에서는 한국인 노동자 수백 명이 체포됐고 약 300명이 신속히 추방됐다.
그러나 이후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합법 체류자였던 사실이 드러나며 외교적 마찰과 집단소송 가능성이 제기됐다. MPI는 이 사건을 “무리한 현장 단속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E-Verify 확대에 대한 논쟁은 결국 제도의 완성도 문제로 귀결된다.
전문가들은 제도 보완 없이 단속만 강화하면 노동시장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MPI는 보고서에서 “E-Verify는 신원 확인 기능과 오류 문제 등 핵심 기술적 결함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라며 “제도 개선 없이 단속 확대만 추진한다면 합법 노동자 피해와 산업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이민단속을 국가적 최우선 과제로 제시해 왔다.
이민당국의 시선이 국경에서 고용 현장으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E-Verify는 미국 노동시장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정책의 변곡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상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