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어요 저도” 97세 피아니스트, 새 앨범 발매 감격
“믿을 수 없어요! 제 나이대의 피아니스트가 또다른 앨범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요? 음악은 기쁨을 가져다주죠. 제 연주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면, 그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죠.”
97세의 폴란드계 미국 피아니스트 루스 슬렌친스카가 세계적인 음반사 데카를 통해 피아노 솔로 앨범을 발매한다. 3월에 발매되는 이번 앨범의 제목은 ‘음악 속의 내 삶(My Life in Music)’이다.
음반사 데카는 슬렌친스카의 97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현지시간)에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데카와 녹음했던 그는 60여년 만에 다시 함께하게 됐고, 지난해 뉴욕에서 앨범 녹음을 마쳤다.
슬렌친스카는 1925년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서 폴란드인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4세에 콘서트에 데뷔한 후 5세에 텔레비전에서 공연했으며 6세에 베를린에서 유럽 콘서트 데뷔를 하며 음악 신동으로 불렸다. 하지만 어린 시절이 순탄친 않았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는 하루 9시간씩 혹독하게 연습을 시켰고, 그는 고통스러웠던 당시를 1957년 자서전에 적기도 했다.
특히 슬렌친스카는 러시아의 거장인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살아있는 마지막 제자다. 현재까지도 그는 스승 라흐마니노프에게 받은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그는 “작곡가의 입장에서 음악을 생각하는 것은 스승 라흐마니노프 덕분”이라고 했다.
라흐마니노프와의 일화도 여전히 그에겐 생생하다. 당시 9세였던 슬렌친스카는 그의 작품 중 하나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라흐마니노프가 이를 멈추게 하고 소리에 색이 없다고 말했다. 소리는 시각적인 게 아니라는 슬렌친스카의 말에 라흐마니노프는 그를 창가로 데려가 봄의 파리를 함께 바라봤다. 그 뒤 라흐마니노프가 슬렌친스카를 위해 연주했고, 그렇게 올바른 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다고 전했다.
이번 앨범은 라흐마니노프와 미국 작곡가 사무엘 바버 등의 관계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 그의 평생의 친구였던 미국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추도식에서 연주한 곡을 포함해 쇼팽의 음악을 전반적으로 탐구한다.
쇼팽 연주의 1인자로 꼽힐 만큼 쇼팽의 음악은 슬렌친스카의 음악적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앨범에는 드뷔시, 그리그, 바흐 등의 곡도 수록돼 있다.
유명세답게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을 위한 연주도 수차례 했다. 레이건, 케네디, 카터 등 미국 대통령들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등 앞에서 연주했으며, 트루먼 대통령과는 듀엣 연주를 하기도 했다.
100세에 가까운 나이이지만 그는 현역 피아니스트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뉴욕 주재 폴란드 대사관에서 열린 2021 쇼팽 국제 페스티벌과 친구들(2021 Chopin International Festival and Friends)에서 공연했고, 오는 2월6일 펜실베니아 레바논 밸리 대학에서 리사이틀을 진행한다.
데카 레이블 그룹의 공동 대표인 로라 멍크스(Laura Monks)와 톱 루이스(Tom Lewis)는 “컬러 영화가 나오기 전, 텔레비전의 탄생과 동시에 그가 콘서트에 데뷔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9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특별하다”며 “어떤 직업이든 이처럼 지속적인 우수성을 달성하기는 어렵다”고 극찬했다.
슬렌친스카는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에 음악의 의미도 전했다. “20대에는 30살이 될 때까지 하겠다고 했다가, 30대에 여전히 음악 일을 하고 있어서 40대에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이제 저는 90대가 됐고, 여전히 음악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어요. 음악은 제게 삶과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