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국 간 갈등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양측이 우크라를 사이에 두고 육·해·공 첨단 무기 시스템과 병력을 증강 배치하면서 동유럽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일각에선 ‘신(新) 냉전’ ‘3차 세계대전 위기’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新냉전·3차 세계대전 위기’…극으로 치닫는 우크라 갈등
이번 위기는 지난해 말 러시아가 우크라 국경과 접한 서부 지역에 전투부대를 증강 배치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다 그해 12월 초 미 정보당국이 러시아가 약 100여 대대, 17만5000명을 투입해 올해 초 우크라를 침공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갈등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즈음(12월7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을 열고 우크라 사태를 논의했지만 입장차만 확인했다.
올 들어 미·러 양자 실무회담과 러·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위원회(NRC),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틀을 통한 연쇄 회담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간 제네바 회담 등을 통해 협상에 나섰지만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같은 시기 유럽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독일과 프랑스가 러시아와 우크라를 오가며 중재를 시도했고 2019년 중단됐던 러·우크라·독·프의 ‘노르망디 형식 회담’도 부활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도 적극 개입하며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와 우크라 양측 모두와 관계가 원만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중재를 자처하며 양국 정상을 자국으로 초청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국과 러시아 간 군사 대치 상황은 여전히 엄중하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의 동·남·북 3면을 사실상 포위하면서 군사적 위협을 키우고 있다. 자국 서부(우크라 동쪽)에 배치한 병력이 현재 12만7000명 규모로 알려졌고, 벨라루스(우크라 북쪽)와 크림반도·흑해(우크라 남쪽)에도 훈련을 명분으로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고 실전 훈련을 강행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은 동유럽에 있던 미국산 무기 반출을 승인했고 최정예 부대가 포함된 8500명 규모의 병력을 보낼 준비도 마쳤다. 영국, 스페인, 덴마크, 캐나다, 발트해 3국 등 나토 동맹국은 우크라 또는 인근 지역에 무기와 병력 지원을 했거나 검토 중이다. 러시아와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이슈가 있는 독일만 무기 대신 야전병원과 방탄헬멧을 지원하는 것으로 한 발 물러서 있다.
◆”서방은 이해 못할 소련 제국주의 야망”
사실 우크라 동부 분쟁은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강제 병합한 지난 2014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우크라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의 이른바 ‘돈바스 전쟁’이다. 8년 간 이어져 온 우크라 정부군과 친(親)러 분리주의 반군 세력의 교전으로 양측에서 최소 1만4000여 명이 숨졌다. 부상자와 실향민, 망명자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 1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그렇다면 푸틴 대통령은 ‘왜’, 그리고 ‘왜 지금’ 이렇게까지 상황을 극단으로 내모는 것일까.
그 답은 먼저 이번 사태에서 러시아가 제시한 ‘양보할 수 없는’ 요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러시아는 협상이 시작되면서부터 ‘우크라의 나토 가입 금지’와 ‘러시아 인접국에서의 나토 무기·병력 철수’를 줄곧 요구했고, 지금도 이 2가지를 ‘레드 라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이번 사태의 원인은 러시아가 아닌 나토에 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나토가 옛소련 독립국가 가입을 받아들이고 러시아 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배경엔 옛 소련 해체와 패권 경쟁이 똬리를 틀고 있다.
옛 소련 군소 독립국가들은 소련 붕괴 후 빠르게 친서방으로 바뀌었고 소련과 위성국 간 군사동맹이던 ‘바르샤바 조약 기구’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나토에 속속 가입하면서 반러 세력을 확장하는데 기여했다.
1999년 3월 체코와 헝가리, 폴란드에 이어 2004년 3월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2009년 4월 알바니아 등 바르샤바 조약 기구에 몸 담고 있던 국가들이 나토로 각각 적을 옮겼다.
우크라 역시 나토 가입을 신청한 상태다. 나토는 2008년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에 가입 승인을 ‘약속’하는 선언문을 냈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이제까지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선 우크라는 정치를 넘어 지정학적으로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인 셈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우크라는 고대 국가 ‘키예프 루스’ 형성지로, 러시아가 시작된 곳이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땅”, “러시아인과 우크라인은 형제”라고 언급해 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와 관련 더 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은 키예프에 대한 강박적 스토킹 있는데 ‘모든 러시아 도시의 모태’로 신격화했다가 또 그 다음엔 서방 세계에 팔려 나간 ‘매춘부’로 매도했고 그러다 러시아에 대항하는 ‘암흑 세력’에 조종 받는 일종의 ‘좀비’로 비난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번 위기는 “서방 세계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에 대해 갖는 강박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키예프 루스. (출처=위키피디아)
◆정치·지정학적 ‘최전선’…”美패권 흔들려는 목적도”
미국과 유럽을 분열하기 위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피오나 힐 전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 러시아 선임국장은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이번 푸틴의 목표는 우크라에 대한 나토의 ‘개방된 문’을 닫거나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있다”며 “그는 유럽에서 미국을 몰아내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특히 “2021년 12월은 소련 해체 30주년이 되는 해였다”며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1990년대에 삼켜야 했던 쓴 약을 미국에 맛보게 하길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미국이 국내외에서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처했던 것과 같은 곤경에 놓여 있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은) 나토를 미국의 연잔성상으로 여기고 있다”며 “현재 나토 동맹에 대한 러시아의 움직임은 모두 미국을 향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국내 정치적인 목적도 있어 보인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인권단체 메모리얼 인터내셔널 폐쇄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탄압 등에 대한 자국 내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