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티후아나에서 미국 입국을 기다리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에서 온 애견을 동반하지 못하도록 하는 연방보건 규정이라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14일 보도했다.
평생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했던 나타샤 흐리트센코(30)는 8년 전 취직해 수입이 생기자마자 첫 두달치 월급을 털어 순수 혈통 말티즈 강아지를 샀다. 수도 키이우 아파트에서 여동생과 함께 강아지 에디를 키우던 흐리트센코는 전쟁이 나면서 다른 모든 것은 버릴 수 있어도 에디만큼은 두고 떠날 수 없다고 동생에게 말했다.
자매는 에디를 데리고 폴란드, 독일, 포르투갈을 전전하다가 친구가 살고있는 미국 버지니아로 가기로 했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면서도 에디는 항상 그들 품이나 무릅 위에 있었다. 마침내 멕시코 티후아나에 도착했지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개는 미국 입국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미 연방 규정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애완견을 멕시코에 남겨 두고 떠났다는 것이다. 나타샤는 동생에게 “유럽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There are now refugees from Ukraine on the southern border of the USA with Mexico pic.twitter.com/8GGcSddWCy
— Alpha News (@AlphaWarNews) April 3, 2022
티후아나에서 미국 입국을 기다리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집과 가족, 직업, 이웃을 잃고 떠난 사람들이다. 이들중 천신만고를 겪으며 애완동물과 함께 온 사람들에게 입국 장벽은 청천벽력이다. 여동생 이라(31)는 “에디는 내 목숨과도 같다”고 했다.
우크라이나구호기금의 자원봉사자 빅토리아 핀드릭은 “강아지들을 우리에게 보내고 있어 하루하루 강아지 숫자가 늘고 있다”고 했다.
미 질병통제센터(CDC)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약 50개국에서 온 강아지들을 광견병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입국을 금지한다.
우크라이나 난민 신속 입국을 위해 마련된 티후아나의 보행자 전용 국경통로를 관장하는 세관 및 국경통제 요원들은 당초 상당수 애완동물의 입국을 허용했었다고 자원봉사자들이 전했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온 애완동물 입국이 금지됐다는 것이다.
흐리트센코 자매는 우크라이나를 떠나오면서 에디가 국제여행을 하는데 필요한 절차를 모두 밟았다. 폴란드의 자원봉사 수의사가 광견병 예방접종을 해줬고 독일에서 두번째로 접종했다. 독일에선 기생충약도 먹었고 마이크로칩도 심었으며 국제 여행이 가능하다는 국제 신분증과 서류도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는 공식 절차가 지연됨에 따라 자매는 티후아나를 통해 미국으로 가기로 했다. 멕시코는 비자가 필요없기에 가기만 하면 미국 국경에서 입국이 가능했다.
리스본에서 멕시코까지는 아무런 문제없이 올 수 있었다. 자매의 트렁크에는 뉴먼스 오운(Newman’s Own) 유기농 닭고기 개사료 캔이 가득했다. 에디는 소형 펫넬에 들어간 채로 비행기를 탔다.
지난주 칸쿤 공항에서 에디는 동물검역관의 철저한 서류심사와 신체검사를 통과했다. 에디의 건강을 보증하는 공식문서도 받았다. 지난 10일 티후아나행 비행기에 올랐다. 티후아나에는 수백명의 우크라이나인이 북적거렸다. 에디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하는 체육관 안에서 폴짝폴짝 신이 나서 뛰어 다녔다.
이라는 “마음을 놓았고 모두 잘돼간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에디를 데려가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1만km 이상, 여러 나라 국경을 지나면서 많은 어려움을 이겨냈지만 이번 장벽은 철옹성이었다.
티후아나에서 난민을 돕는 미국인 자원봉사자 핀드릭은 현재 절차대로라면 애견과 함께 합법적으로 미국에 입국하려면 몇 주는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트라우마를 겪는 난민 가족들이 애완동물을 포함한 가족들과 헤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은 애완견을 데려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돈을 쓰고 돌봤다”면서 “미국 규정이 있고 규정이 필요한 이유도 알지만 난민들이 그런 규정에 맞추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광견병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입국한 아나스타시아 테레젠코는 지난주 입국하기 위해 멕시코 수의사로부터 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받은 뒤 입국했다. 남편과 두 아이들, 그리고 미니 말티즈 루카와 함께였다.
폴란드 오어에서 가족과 함께 친구집에 머물다가 온 데레젠코는 “이민 당국자가 우리를 데리고 갈때 루카를 안고 있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6개월령인 루카는 지금 머무는 집의 강아지와 금방 친해졌다. “루카는 브로바리에서 이곳까지 힘든 여정을 이겨냈다”고 했다. 보로바리는 키이우 인근 도시다.
흐리트센코 자매처럼 최근에 온 사람들은 애완동물과 함께 입국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 두 자매에게 이 경고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방법을 찾았다. 멕시코는 광견병 입국금지 대상국이 아니기에 멕시코 출신 강아지들은 광견병 예방접종 증명이 없어도 쉽게 미국입국이 가능했다.
며칠전 미국 동물애호가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온 강아지들을 데리고 미국에 입국했다고 했다. 주로 개와 고양이인 수십 마리의 우크라이나발 애견동물들이 이미 이들 미국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캘리포니아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흐리트센코 자매도 에디를 데려가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 12일 저녁 자매의 입국 차례가 됐지만 다음날까지도 에디를 데려가줄 미국인을 찾지 못했다. 나타샤는 “크게 낙심했다. 에디를 밤새 떼어놓을 수 없었다. 혼자 있게 둔 적이 없다. 에디는 우리의 일부”라고 했다.
자매는 미국 입국 직후 에디를 데려다줄 사람을 찾을 때까지 입국을 연기했다. 13일 오전 10시 에디를 데려가겠다고 약속한 체육관 근처 상자에 넣었다. 에디는 상자를 물어뜯었다. 자매는 에디가 불쌍해 눈물을 흘렸다. 나타샤는 “강아지에게 잘 될 테니 참으라고 말할 순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미국에 입국해 다른 키이우 출신 리우바 파블렌코를 만났다. 티후아나에서 알게된 파블렌코 역시 멕시코에 남겨둔 치와와 마야를 기다리면서 샌디에고 근처 샌이시드로의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두 가족은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다.
자매가 입국한 지 5시간이 지나서야 에디가 입국하는 장면의 동영상이 전화로 전송됐다. 자매는 에디가 잘 지내는지 동영상을 보고 또 봤다. 나타샤가 “맙소사. 에디가 늙었네”라고 했고 이라는 “목이 마른가 보네.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라고 했다.
45분 뒤 두 가족의 강아지들이 도착했고 가족들은 강아지를 끌어안고 뽀뽀했다. 이어 화이트 언 화이트(White on White) 샴푸로 목욕을 시키고 하나뿐인 트렁크에 넣어온 유기농 사료를 먹였다. 그리고 드디어 친구가 기다리는 버지니아로의 마지막 여로에 올럈다.
미국은 조만간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비행기편으로 미국에 직접 입국하도록 할 예정이다. 이곳에서도 CDC는 똑같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 흐리트센코 자매에겐 에디와 함께 입국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두 사람은 아무 대책없이 에디와 함께 공항을 통해 입국하지 않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