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특정 정치인의 열성 지지자들의 결사체를 아무개를 ‘사랑하는’ 모임으로 부르고 있다. 내 기억에 정치인을 ‘사랑하는’ 모임으로는 ‘노사모’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
노사모’ 이후 보수 쪽에서는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즉 ‘박사모’가 등장하였다. 이제 ‘반기문을 사랑하는 모임’ (‘반사모’)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곧 ‘문사모’, ‘안사모’ 등등 다른 대권주자들을 ‘사랑하는’ 팬클럽 들도 여기 저기 등장할 것이다.
정치인 아무개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만큼 열렬히 지지한다는 뜻이겠지만 나는 정치판에서 사용하는 이 ‘사랑’이라는 말이 좀 불편하게 느껴진다.
근대 시민 사회에서 사랑은 사적인 영역에 존재한다. 우리는 부모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 이 사랑에는 이유도 없고 조건도 없다.
자식이 아무리 못났고 공부를 못한다 해도 부모는 그 자식을 사랑한다. 그게 진정한 자식 사랑이다. 연인을 사랑할 때도 그 사람이 능력이 있거나 돈이 많다고 하여 사랑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아무 이유도 없이 그 남자가 혹은 그 여자가 그냥 마구 좋아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만약 그 사람이 부자라서, 또는 성공한 사람이라서 사랑한다면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우리는 이야기한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도 그 여자가 살림을 알뜰살뜰 잘 한다거나 집안을 반짝반짝 빛나게 청소를 잘 한다든지 하는 이유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날 때 그 상실감은 다른 사람에 의해 메꿔지지 않는다. 자식이 죽었을 때 “다른 자식들도 있고 또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말은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없다.
이미 죽은 자식을 대체할 자식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을 때 “또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다”라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세상에서 하나뿐이었던 그 사람을 대신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시민사회의 공적인 영역에서 정치인은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끊임없이 평가당한다.
우리는 정치인을 그냥 좋다는 이유로 지지하지 않는다. 그의 복지 정책이 좋아서 혹은 경제를 살릴 것 같아서, 부정부패를 척결할 것 같아서 등등의 이유로 그에게 투표한다.
내가 지지하던 정치인이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고 생각될 때는 지지를 거두며 이를 배반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적 리더쉽이 ‘사랑’이라는 강력하고도 맹목적인 감정적 요소와 혼재될 때는 정당정치가 정책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노사모’나 ‘박사모’가 단순한 팬클럽으로 남아있지 않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나간 핵심 정치세력이 되었던 것은 정당이 특정 인맥에 의하여 좌지우지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정치인에 대한 사랑은 자칫하면 독재와 개인숭배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정치인 사랑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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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6년 작성된 다소 시간이 지난 내용이어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팬덤 현상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 김은희 교수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학 중앙연구원 전임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일제시대의 가족변화에 관한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주요 논문으로 “From Gentry to the Middle Class: The Transformation of Family, Community, and Gender in Korea”(박사학위논문), 「도시 중산층의 핵가족화와 가족 내 위계관계 변형의 문화적 분석」(『한국문화인류학』, 1995), 「문화적 관념체로서의 가족: 한국 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한국문화인류학』, 1995), “‘Home is a Place to Rest’: Constructing the Meanings of Work, Family and Gender in the Korean Middle Class”(Korea Journal, 1998), “Mothers and Sons in Modern Korea”(Korea Journal, 2001), 「대가족 속의 아이들: 일제시대 중상류층의 아동기」(『가족과 문화』, 2007) “도시 중산층 기혼여성의 취업과 부부 역할:’자기 일’의 정치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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