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만에 대화에 나선 미국과 중국 정상이 대만 문제를 두고 충돌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만해협의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고 경고한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불장난’을 거론하며 반박한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풀 기자단과 중국 외교부 등에 따르면 두 정상은 28일(현지시간) 오전 8시33분(한국 시간 오후 9시33분)부터 10시50분(한국 시간 오후 11시50분)까지 2시간17분에 걸쳐 통화했다. 지난 3월18일 이후 첫 통화로,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다섯 번째다.
통화 주제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롯해 경제 문제, 양국 간 경쟁 관리 등 다양한 주제가 예측됐는데, 특히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대만 방문 추진설로 양안 관련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어서 관련 내용에 주목됐다.
◆中 “불장난하면 타 죽어”…美 “일방적 현상 변경 강력 반대”
두 정상은 통화에서 대만 문제를 두고 기 싸움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통화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을 약화하거나 현상을 변경하려는 일방적인 시도에 강하게 반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라고 밝혔다.
그간 미국 군 당국과 싱크탱크 등에서는 중국의 2027년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수차례 제기됐다. 중국의 실제 대만해협 인근 군용기·선박 활용 무력 시위도 빈번하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 침공 시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해 중국 정부의 거센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다만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자국의 대만 관련 정책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이 침공 시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이후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의 대만 관련 ‘전략적 모호성’의 효용이 다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었다.
시 주석도 강한 어조로 맞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홈페이지에 공개한 통화 관련 보도자료에서 “대만 문제에 관한 중국 정부와 인민의 입장은 일관적이다”, “중국의 국가적 자주권과 영토의 온전함을 단호히 수호하려는 14억 이상의 중국 인민의 의지는 확고하다”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자료에는 “민심은 저버릴 수 없고, 불장난을 하면 반드시 그 자신이 불에 탄다(타 죽는다)”라는 표현도 포함됐다. 이는 중국이 대만 문제를 언급할 때 자주 쓰는 표현으로, 시 주석이 이들 표현을 사용해 강하게 자국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하나의 중국 원칙’도 언급됐다.
시 주석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양안 모두가 하나의 중국에 속한다는 사실과 현주소는 분명하다”라며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과 미국 관계의 정치적 기반”이라고 했다. 아울러 “우리는 대만 독립과 외세의 간섭을 단호히 반대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中 자료에 ‘대만’ 강경 발언 가득…美는 세부 설명 자제
이날 중국 외교부 자료에는 대만 관련 강경 발언이 가득했다.
소위 ‘불장난’ 발언은 물론 “미국은 중·미 3대 공동성명(코뮈니케)을 이행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며 언행일치를 해야 한다”라는 발언도 있었다. “대만 독립세력에 결코 공간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바이든 대통령 발언도 대신 전했다.
대만 문제는 이날 총 6단락으로 이뤄진 중국 외교부 보도자료에서 두 단락에 걸쳐 기술됐다. 반면 미국 백악관 보도자료는 전체가 총 5문장 분량으로 중국 자료보다 상당히 짧았다. 그 중 대만 문제는 마지막 문장에 언급됐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그들(바이든·시진핑)은 대만 문제에 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라며 “언제나 그러듯 차이가 있는 영역에 관해 논의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양측은 대만 문제에 관해 직접적이고 솔직한 논의를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국 측은 이를 넘어서는 세부적인 내용에는 말을 아꼈다.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는 “미국과 중국이 대만에 관해 차이를 보유했지만, 40년이 넘도록 이를 관리해온 것처럼 이 문제에 관해 소통의 선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논의했다”라고 부연했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불장난’ 등 중국 측 거친 언사와 관련,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양 정상의 대화에서도 유사한 언어를 사용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이 이 문제와 관련해 꾸준히 사용하는 다양한 메타포를 분석하지는 않겠다”라고 말을 아꼈다.
이 당국자는 다만 “(양국 간) 긴장이 높은 상황에서 특히 정상 급에서 이런 종류의 소통을 하는 게 특별히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양국 간 긴장을 초래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추진과 관련해서는 “그(펠로시 의장)의 결정”이라고 역시 말을 아꼈다.
◆’거시경제 협력’ 논의…관세 인하 문제는 논의 안 된 듯
양 정상은 경제 문제도 논의했다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거시경제 문제에 관한 미국과 중국 간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라며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류허 중국 경제 담당 부총리 간 지난 7월4일 화상 통화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이번 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과 자국 인플레이션 대응 차원으로 추진하는 대중국 관세 완화에 관해 논하리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행정부 당국자는 이날 대중국 관세와 이날 정상 통화를 연결 짓는 시각에는 선을 그었다.
이 당국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미국 노동자와 미국 가정에 해를 미치는 중국의 불공정한 경제 관행에 대한 핵심 우려를 설명했다”라면서도 “그(바이든)는 향후 취할 수 있는 잠재적인 조치에 관해 시 주석과 논의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시 주석이 현재의 세계 경제 정세를 ‘도전적’이라고 평가하고, “중국과 미국이 거시경제 정책 조율, 글로벌 산업체인 공급망 안정 유지, 글로벌 에너지·식량 안전 보장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해 소통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美·中, ‘소통 유지’ 중요성 공감…자료에 北 별도 언급 없어
양측은 이날 대만 문제를 두고는 충돌했지만, 그 외 문제에 관해서는 협력 필요성에 대체로 공감한 분위기다.
백악관은 이날 통화를 “미국과 중국 간 소통선을 유지·심화하고, 양측의 차이를 책임 있게 관리하며, 우리 이익이 일치하는 영역에서 협력하고자 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 일환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양 정상이 대만 외에도 양국 관계에 중요한 다양한 문제와 역내·세계 현안을 논의했다고 백악관은 전했다. 각 정상은 특히 기후변화·보건 안보 등과 관련, 각 팀에 후속 조치를 지시했다고 한다. 행정부 당국자는 “양 정상은 각자 팀에 매우 분명히 후속 조치를 맡겼다”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에 관해서도 대화가 오갔다.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는 “양 정상이 (우크라이나) 충돌 및 향후 상황 전개 우려와 관련해 이 시점에서 서로의 생각을 교환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상황에 관한 우려를 명확히 전달했다고 했다.
다만 행정부 당국자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중국 수용 여부와 관련해서는 “이는 이번 대화에서 세부적으로 논의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중국 외교부는 자료에서 “두 정상이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고, 시 주석은 중국의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했다”라며 “양국 정상의 이번 통화에서 솔직하고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갔으며, 이를 위해 양측 실무진이 계속 소통하고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대화 이후 양측 자료에는 북한 관련 내용은 별도로 설명되지 않았다. 북한은 올해 초부터 꾸준히 도발 수위를 높여 왔으며, 풍계리 핵실험장 보수 등 핵실험 준비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세간의 우려에도 실제 핵실험 재개는 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날 통화는 몇 주에 걸쳐 준비됐다. 지난 6월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만난 자리에서 정상 간 대화를 제안했고, 이후 왕이 정치부장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의 발리 회동에서 이번 통화를 제안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