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리튬 건전지를 실수로 삼켰을 경우 어떻게 해결할까? 종이접기 기술을 응용한다. 아코디언의 주름처럼 접어 손가락 마디만하게 된 초미니 로봇을 캡슐에 넣어 삼킨다. 그런 연후 캡슐이 녹아 없어지고 로봇만 남으면 이를 원격조정해 다시 폈다 접었다 하면서 찾아내는 거다.
우주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축구장만한 크기의 아주 큰 망원경이 필요한데 이를 그대로 발사체에 실어 쏘아 올릴 수는 없다. 어떻게 할까? 이 또한 종이접기 기술이 필요하다. 운반할 정도로 작게 접어 실어 나른 후 목적지에 도달하면 다시 펴는 거다. 이 모두가 어린이들의 놀이로만 생각하기 쉬운 종이접기를 응용한 과학이다.
이러한 일들을 연구하고 개발해 온 이가 있다. 로버트 J. 랭(Robert. J. Lang) 이다. 6살 때 종이접기에 처음 접한 후 스탠포드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가 될 때까지도 좋아하는 종이접기에 푹 빠졌다. 종이를 자르지도 않고 단지 접는 것만으로 무언가 만들어내는 매력 때문이었다.
그가 물리연구에 대해 발표한 논문은 80건 이상이고 NASA에서 반도체 레이저, 광학 및 기타 분야에서 받은 특허는 46건에 이른다.
하지만 결국 13년이나 몸담았던 NASA마저 그만두고 종이접기에 올인해 다양한 유형을 시도했는데 심지어 작품하나에 수백번을 접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던 어느날 곤충 종이접기에서 곤충의 발 주름에서 새로운 접는 방법을 발견한 후 개척한 혁신적인 기술들은 의학과 과학, 인체, 건축, 가전제품 등 특히 우주분야에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해냈다. 자동차 에어백을 납작하고 평평하게 접는 방법도 종이접기 기술로 해결한 그는 언젠가는 ‘종이접기가 생명을 구할 날도 올 지 모른다’고 역설했다.
여성들의 패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주름치마 역시 종이접기에서 나왔다.
주름을 플리츠(Pleats)라고 하는데 종이를 자르지 않고 접어 형태를 만들어내는 일본의 전통 종이접기, ‘오리가미(Origami)’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플리츠 플리스(Pleats Please)’라는 컬렉션으로 패션계에 입지를 굳히면서 탄생시킨 세계적인 브랜드의 주인공이 있다. ‘이세이 미야케 (三宅一生: Issey Miyake)’다.
주름잡은 치마가 전에도 있었지만 그는 30톤의 롤러 압력으로 폴리에스텔 원단에 더욱 가는 주름(Micro Pleats)를 잡아 직선의 아름다움을 의상에 적용함으로써 다양한 소재의 옷감에 폭넓게 사용할 수 있게 한 거다.
이로써 그의 플리츠 치마는 가볍고 구김이 없어 활동성이 높아 편하고 실용적일뿐만 아니라 누가 입어도 체형이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보다 유연하고 수려한 자태의 자유로움을 갖게 하였다. (여담으로 유감이지만 종이접기는 세계적으로 일본어 오리가미:Origami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치 인삼이 Ginseng 으로, 두부가 Tofu로 된 것 같이 말이다)
long live issey miyake 💛 pic.twitter.com/yTZLR3GBr6
— skateboard E (@ai_mei_li) August 9, 2022
아무튼 이세이 미야케를 말할 때 꼭 등장하는 이가 스티브 잡스다. 언제나 청바지와 함께 입는 잡스의 검정 터틀넥 티셔츠를 다자인한 이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 전자기업 소니를 방문했던 잡스에게 소니 직원들의 유니폼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디자이너가 이세이 미야케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애플 직원 유니폼을 의뢰했다. 애플 직원들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지만 일상의 편리함과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표현하고 싶었던 잡스는 그에게 검정 터틀넥 몇 벌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옷의 단순하지만 혁신적 디자인이 역시 단순함을 추구하는 자신의 애플 디자인 철학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세이 미야케는 무려 100여 벌의 검정 터틀넥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세이 미야케는 평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옷의 절반만 만든다. 사람들이 내 옷을 입고 움직였을 때야 비로소 내 옷이 완성된다’고. 그러고 보면 우리네 삶의 절반은 물려 받은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면에서 그가 추구하는 주름의 미학이 달리 느껴지지 않는다. 종이접기의 주름이나 인생의 나이테 주름이 여유와 포용으로 성숙한다는 공통 가치를 공유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지난 주 이세이 미야케가 별세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