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간) 스페인에서 명백한 의사 표시만 성관계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는 ‘성관계 동의법’이 통과됐다. 성범죄를 판단할 때 묵시적 또는 수동적 동의인지 따지지 않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스페인 의회는 이날 이른바 ‘예스만 예스'(Only yes is yes)로 불리는 성관계 동의법을 찬성 205명, 반대 151명, 기권 3명으로 가결했다. 보수 ‘국민의 당’과 극우 ‘복스'(Vox)당이 반대표를 던졌다.
하원은 지난 5월 찬성 201명, 반대 140명, 기권 3명으로 표결했다.
이레네 몬테로 성평등부 장관은 “이제 어떤 여성도 성폭행인지 인정받기 위해 폭력이나 협박이 사용됐음을 증명할 필요가 없게 됐다”며 “수 년 간 투쟁 끝의 승리”라고 환영했다.
Thousands of women in all black have flooded the streets of Pamplona, Spain, during the annual Running of the Bulls festival to protest the release of the five men involved in the infamous "wolf pack" rape case. pic.twitter.com/2jNKJhDdQv
— Global Citizen ⭕ (@GlblCtzn) July 6, 2018
새 법은 성폭행 범죄를 따질 때 ‘명백한 동의’가 있었을 때에만 성관계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법은 “동의는 상황에 따라 개인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행동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된 경우에만 동의로 간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성폭행(강간)과 성적 학대 구분도 없앴다.
더 이상 묵시적 또는 수동적 동의가 있었는지 따질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 경우는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거리에서의 성희롱이나 개인의 은밀한 사진 및 동영상 공유 행위엔 벌금형을 부과한다.
이 법을 촉발한 것은 2016년 스페인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른바 ‘늑대무리 사건’이다.
당시 팜플로나에서 열린 소몰이 축제에서 20대 남성 5명이 만취한 18세 여성을 집단 성폭행했는데, 1심 법원은 죄질이 상대적으로 약한 ‘성 학대’ 혐의만 인정했다. 가해자 휴대전화로 촬영된 영상에서 여성이 눈을 감고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것을 묵시적·수동적 동의로 판단한 것이다.
심지어 한 판사는 가해자들에게 여성의 휴대전화를 훔친 죄만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남성들은 판결 후 전원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 사건은 스페인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다. 전역에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었고 성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2019년 스페인 대법원은 가해자들의 ‘성폭행’ 혐의를 인정했고 형량은 징역 9년에서 징역 15년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