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도 도쿄(東京)도가 최근 간토(関東)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다룬 영상을 검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영상에 실린 대학교수의 발언 때문이었는데, 당사자는 직접 입을 열고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도노무라 마사루(外村大) 도쿄대학 대학원 교수는 7일자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쿄도의 인권을 담당 부서에서 관련 영상 상영을 중지하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매우 놀랐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어 “아직까지도 (도쿄) 도에서 설명은 없다. 인권이라는 이름이 붙은 행정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약한 입장의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은 과거 학살을 문제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들의 부서가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의 편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역사 사실 부정 자체가 인권 침해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사건은 이야마 유키(飯山由貴) 작가의 영상 작품에서 시작됐다. 이야마 작가는 지난 8월30일부터 11월30일까지 도쿄도 시설인 ‘도쿄도 인권플라자’에서 장애인과 인권에 대한 전시회를 가졌다.
도쿄도가 상영 중단 지시를 내린 것은 그의 약 26분짜리 영상 작품인 ‘인 메이트'(In-Mates)다. 1930~1940년 도쿄도 정신과 병원에 입원했던 조선인 2명의 진료 기록을 바탕으로, 재일 한국인 래퍼 FUNI씨가 당시 환자들이 가지고 있던 갈등, 고난 등을 표현한 모습이 담겼다.
특히 영상에는 도노무라 교수의 인터뷰도 포함됐다. 도쿄신문 등에 따르면 그는 영상에서 “(간토 대지진 당시)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살한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한다.
1923년 일본 간토대지진 당시 “재일조선인(또는 중국인)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라는 유언비어가 나돌면서 일본 민간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6000여명에 이르는 재일조선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이야마 작가에 따르면 영상 상영 금지를 통지받기 전인 지난 5월, 도쿄도 인권시책추진과 직원이 센터에 이메일로 도노무라 교수의 해당 발언을 언급하며 “(도쿄) 도에서는 이 역사 인식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또한 매년 열리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다며 “조선인 학살을 사실이라고 발언하는 동영상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가 있다”고 전달했다는 것이다.
도노무라 교수도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이야마 작가의) 인터뷰에 응해, 일본인 서민이 억울한 조선인을 살해한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도쿄도 인권부는 그것을 문제 삼아 (영상 상영) 중지를 요구한 것으로 나는 보고있다”고 밝혔다.
이야마 작가는 해당 문제와 관련 도쿄도 인권부와 대화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영상 작품 편집 후 전시 제안도 수용되지 않았다.
이에 이야마 작가는 지난 10월28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사실을 밝혔다. “이 문제는 고이케 지사가 아니면 일어나지 않았던 게 아니냐. (고이케 지사가)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 태도는 역사의 부정, 차별의 선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도쿄도는 “정신 장애인 인권이라는 (전시회) 취지에 따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메일을 보낸) 직원은 조선인 학살이 역사가의 견해가 나뉘는 사실(史実)이라고 의식해 내용을 확인하는 의미로 메일을 보냈다. 영상을 채택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도지사는 관계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도노무라 교수는 간토대지진 당시 도쿄(東京), 가나가와(神奈川) 등 간토 지역에서 주민, 자경단, 경찰, 군대가 아무 죄 없는 조선인들을 학살한 것은 “개인의 주의주장(主義主張사람이 판단 기준으로 삼는 자신의 생각·입장·사상)과 관계없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역사의 사실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학살을 보고 들은 사람의 증언, 일기, 그림 등이 많이 남아 있다. 박해한 쪽 일본인의 기록도 있다. 제 2차대전 이후 학자들의 조사 뿐만 아니라 무보수로 시민의 증언, 사료를 모아 사실을 발굴했다. 추모비도 세웠다”고 지적했다. 이는 “비참한 일을 후세에 전달하겠다는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며 “학살 부정은 선인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도쿄) 도가 1970년대 초 간행한 ‘도쿄백년사’에서는 조선인 폭동 유언비어가 확산되자 청년단, 재향군인, 소방조 등으로 구성된 조직을 자경단이라 칭하고, 이들이 조선인을 박해했고 적혀져 있다”며 도쿄도, 정부 문서에도 학살 사실이 명기돼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칼과 죽창 등으로 무장해 얼굴이 조선인 조선인 답다거나, 말이 불명료하다는 이유만으로 반죽음을 당하게 해, 경찰에게 끌려가거나 참살했다는 기술도 있다”고 했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이 확고한 사실인데도 없었다는 등 주장하는 책이 출판되는 배경에 대해서는 “새로운 사료가 발견된 것도 아니고, 학살 부정론은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민족적인 대립 틀에서만 봤을 때 재일 코리안(한국·조선인)이 일본인을 공격하고 있다고 보고, 학살은 없었다고 믿고 싶은게 아니냐”라고 분석했다. “일본인은 한국·조선인 보다 위에 서있는 존재라는 의식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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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AP/뉴시스]지난달 30일 일본 도쿄 시민들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거리에서 교통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2022.12.07.
그는 고이케 지사가 2017년부터 매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고 있는 데 대해, 그가 “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면서도 “그러나 애매한 태도는 도 직원 사이에서 ‘학살’을 언급해서는 안된다는 의식을 불러온게 아니냐.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고, 일반인에게도 학살이 있었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하지 않느냐. 그것은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재해가 있을 때 “그때마다 재일 코리안은 박해가 다시 가해질까 불안해진다고 말한다. 학살을 부정하는 잘못된 역사 인식은 때로는 사람을 선동하고, 목숨을 빼앗는 일이 있는 위험한 것”이라며 “학교 교육, 사회 교육의 자리에서 마이너리티 역사, 근대 일본과 조선의 관계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촉구했다.
도노무라 교수는 “학살 유무에 대해 잘 모르는 직원이 (도쿄도 인권부에)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인권 행정을 담당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을 받아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나는 언제든 고이케 지사와 도의 직원에게 그 역사를 말할 용의가 있다. 우선은 도가 작품 상영 중지에 대해 납득이 가는 설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근현대사 전공인 도노무라 교수는 재인 조선인 역사, 식민지 시대 조선사회 등에 정통하다. 저서로는 ‘조선인 강제연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