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 흑인 거주지 필모어구가 재개발되면서 업체 883곳과 2만 명의 주민이 밀려났다. 대부분 흑인들이다. 10년 뒤까지 수천 명이 집이 없는 상태로 방치됐지만 이 지역엔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수백만 달러 주택들이 들어섰다.
이 같은 인종 차별에 대한 보상을 논의해온 샌프란시스코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보상자문위원회가 피해자 1인당 500만 달러 보상을 권고하면서 시가 파산할 것이라는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7일 보도했다.
컨설팅 회사 피코크 파트너십의 경영자로 자문위원회 의장인 에릭 맥도넬은 “피해자들이 경제적으로 회복하고 발전하도록 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감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전국에서 수십 곳의 도시와 주 당국이 흑인 차별에 대한 보상을 추진하고 있다. 노예 및 짐 크로우 법(Jim Crow lows; 미 남부 일부 지역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지속된 흑백 분리법)에 의해 수십 년 동안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이다. 장학금, 주택 바우처, 현금 보상 등 다양한 방법이 제안된 상태다.
그러나 보상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는 문제를 두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2020년 경찰에 살해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힘을 얻은 흑인 보상 문제가 기로에 서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500만 달러 보상 권고는 지금까지 제시된 금액 중 가장 많은 액수다. 이에 따라 반대 세력은 연 예산 140억 달러(약 18조4000억 원) 수준인 샌프란시스코 경제가 코로나 팬데믹 피해에서 회복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샌프란시스코 공화당 존 데니스 의장은 흑인 주민에 대한 보상에는 찬성하지만 권고안은 논의를 시작할 출발점이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보상위원들 일부도 보상 권고 액수에 불만을 표시한다. 현금 보상을 지지해온 경제학자 윌리엄 대러티 주니어는 “지방 당국에 500만 달러 보상을 권고한 것 자체가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을 훼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찬성하는 사람들은 2021년 총인구조사에서 샌프란시스코 주민 가운데 흑인의 소득 수준이 평균 4만4000 달러인데 비해 라틴계 주민 8만5000 달러, 아시아인 10만5000 달러, 백인 11만3000 달러로 나타난 점을 지적한다.
샌프란시스코 인권위원회 셰릴 에반스 데이비스는 이 같은 소득 차이가 주거지 및 학교 분리 등 인종 차별 정책에 기인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평균 주택가격이 130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샌프란시스코의 주거비가 높은 점도 보상금 액수 산정에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보상 규모가 정해지면 다른 지역의 보상 논의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 최초로 정부 지원을 받는 보상 프로그램을 실시한 시카고의 에반스턴 지역의 경우 시 당국은 흑인 주민들에게 2만5000 달러의 주택 바우처를 제시했다가 너무 적다는 비판을 받았다.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의 경우 10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책정했으나 흑인 주민에 대한 현금 보상은 배제했으며 백인 주민들도 보상 대상자에 포함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듀크대 경제학자 대러티 교수는 미국 전체 인종에 따른 부의 차이를 감안하면 흑인 1인당 최소 35만 달러를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캘리포니아 주는 5명의 경제학자들로 팀을 구성해 차별로 인해 흑인들이 입은 피해 액수를 산출하도록 의뢰했다.
경제학자들은 1933년~1977년 사이 차별적 주택 정책에 따라 캘리포니아 주가 부담해야 하는 보상금을 5690억 달러로 산정했다.
이는 흑인 주민 1인당 22만3239 달러에 해당한다. 이 팀은 다른 차별로 인한 피해까지 포함한 피해액을 산정해 6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주 당국의 피해보상은 오클랜드, 로스앤젤레스, 새크라멘토 등 시 당국의 보상 움직임과는 별 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수용됐던 일본계 미국인들도 1970년대부터 보상을 요구해왔다.
몇 년 동안 강제 수용된 수천 명이 잃은 주택과 수용소 생활로 숨진 사람들에 대한 보상 규모는 수십 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일본계 미국인 1인당 2만 달러를 보상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문제는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보상은 흑인 차별에 대한 보상에 참고가 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진보 색채가 강력한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보상위원회가 권고안을 발표한 뒤 인종차별 내용을 담은 증오 메일과 음성 메시지가 위원회에 폭주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내용도 있었다.
보상위원회가 최종 권고안을 확정하면 올해 안에 샌프란시스코 감독위원회가 투표로 시행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위원들은 모두 선출직이다. 비판이 맹렬하지만 일부 위원들은 보상위원회 권고안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는 위원들도 있으며 보상위원회 위원 일부도 반대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실리콘 밸리의 거부들이 사는 곳이지만 시 재정 적자가 앞으로 2년 동안 7억2800만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